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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연습도 축제의 즐거움을 덜진 않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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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05면

왼쪽부터 정명훈,김수연,양성원,송영훈,김선욱,이유라,최은식. 사진 제공 CMI

5중주에서 4중주로.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7인의 음악인들’은 공연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마지막 연주 곡목을 변경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와 첼로가 함께하는 슈만의 피아노 5중주 Op.44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바뀐 것. 대신 바이올린 한 대가 빠지는 피아노 4중주 Op.47이 연주됐다.이처럼 연주곡 결정은 대체로 즉흥적이었다. 피아노 두 대가 연주할 곡목 또한 공연을 앞두고 급하게 정해졌다. ‘10분 정도의 짧은 작품’으로만 알려졌던 레퍼토리는 역시 일주일 정도 전에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 5번으로 정해졌다.

스타 갈라쇼의 모범 보여준 ‘7인의 음악인들’

곡목 변경은 연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힘들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미리 맞춰볼 시간이 많지 않은 연주자들은 손에 익은 음악으로 연주곡을 바꾸는 데 의견을 모았다. 피아노 작품 또한 제각기 바쁜 연주자들이 만날 짬을 낸 이후에야 결정할 수 있었다.이토록 복잡한 스케줄을 가진 출연자들은 피아노 정명훈ㆍ김선욱, 첼로 양성원ㆍ송영훈, 비올라 최은식, 바이올린 이유라ㆍ김수연. 각자 독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7명은 공연 전 단 두 번의 리허설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과천ㆍ대구ㆍ부산ㆍ인천과 서울까지 잡혀 있는 총 다섯 번의 공연 횟수보다도 적은 연습 시간이었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2번. 현악기 연주자 네 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 연주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제2 바이올린을 맡았던 김수연(22)이다. 호기로운 음색과 정교한 표현력으로, 마치 독주 무대에서처럼 객석의 귀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 이 팽팽한 젊음을 살려준 것은 함께 연주한 선배이자 동료들이다. 동갑내기인 최은식ㆍ양성원(42)과 김수연 사이에는 꼭 20년의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무대 위의 오래된 편안함과 재치 있는 해석을 보여줬다. 개인기가 드러났다 묻히기를 반복하는 실내악의 즐거움이 펼쳐진 연주였다.

이처럼 ‘스타’ 독주자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었다. ‘귀로 듣는 능력’이 더 빛났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은 호흡을 맞추기가 까다로웠을 터. 송영훈(35)과 김선욱(21), 김수연이 강렬한 리듬을 주고받으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을 고려한 해석은 짧은 연습 시간을 무색하게 했다.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하기를 즐기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집중력 넘치는 타건이 특히 눈에 띄었다.

정명훈(56)이 김선욱에게 제1피아노 자리를 내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지나 음악회는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흘러갔다. 슈만의 가장 낭만적인 작품 중 하나인 피아노 4중주 작품에서 연주자들은 실내악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여줬다. 초반에 다소 불안한 호흡으로 출발한 것은 약간의 흠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가 조금씩 어긋났다. 보통의 연주자들이라면 당황했을 법한 상황. 하지만 이들은 다소 퇴폐적이기까지 한 슈만의 감수성을 끝까지 이끌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온 연주자들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연주의 완성도에 대한 까다로운 비판, 작품 해석에 대한 진지한 분석 등은 이날의 연주와 어울리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남짓한 공연에 7명을 출연시키다 보니 각각의 연주를 충분히 들을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7명이 모여 불과 4곡을 연주했고, 그마저 짧은 소품이 절반이었던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이 ‘축제’ 분위기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문제 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늦여름의 즐거운 무대였을 뿐이다.

앙코르가 ‘춤곡’ 일색이었던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말해준다. 피아졸라의 탱고 두 곡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3번이 선택됐다. 청중은 귀에 익고 흥겨운 음악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유명 연주자가 한꺼번에 서는 갈라 콘서트 분위기의 모범을 제시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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