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산가족 상봉 재개 끌어낸 ‘원칙과 유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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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2년 만에 재개될 수 있게 됐다. 남북은 어제 끝난 적십자회담에서 추석을 맞아 각각 100명씩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소나마 달래주면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도 풀리는 가시적 단초가 마련됐다고 본다. 이번 합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준당국 간 합의인 만큼 당국 간 대화 재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적십자 당국 간 이번 합의는 남북이 서로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측 대표단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관련, ▶비(非)정치성 ▶상시성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상봉 재개라는 현실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원칙에 집착,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추가 상봉을 고집했더라면 합의문 도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도 당초 입장에서 물러나 금강산 면회소를 단체 상봉 장소로 받아들였다.

양측이 ‘적십자 인도주의 문제를 남북관계 발전의 견지에서 계속 협의해 나간다’고 합의함으로써 추가 상봉과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해결,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 여지를 남겨놓은 것도 원칙과 유연성이 조화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이산가족 입장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크겠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막혔던 물꼬를 튼 첫 합의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북한 핵 문제라는 근본적 장애가 가로놓여 있지만 남북 간에는 당국 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현안들이 적지 않다. 관광객 피격 사건의 여파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 관광 재개 문제가 그렇고, 개성공단 토지임대료와 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금강산·개성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와 무관하다는 것이 한·미의 판단이라지만 대북 제재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재개하기는 힘들다. 결국 이들 문제도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칙에 바탕을 둔 유연한 태도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