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가족여행 떠난 친구 안 부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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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우리가족 하나되기 캠프’에 참가한 가족들이 눈을 가리고 손자·손녀 찾기 게임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 5월 개최한 뚝섬 나눔장터 수익금으로 부모 대신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조손(祖孫)가정 10곳에 1박2일의 '특별한 여행'을 선사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아이들은 비록 이틀간이지만 할머니와 함께 온 여행이 마냥 즐겁다. 캠프장 뜰은 마음 한구석의 슬픔을 잠시 잊고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넘쳤다.

"요것이 내 새끼여. 볼이 통통한 게 볼 것두 없지 뭐."

지난 11일 오후 9시 경기도 포천의 캠프촌. 눈가리개를 한 채 얼굴만 만져보고 손자를 찾아내는 게임 시간이다. 성준이(7.초등학교 1년.이하 가명)의 할머니 원일화(69)씨는 익숙한 손길로 단번에 손자를 찾아낸다. 활짝 웃으며 손자를 품에 안는 모습이 여느 할머니와 다를 바 없지만 성준이와 할머니 사이에는 모자 같은 끈끈한 정도 함께 흐른다. 부모 없이 살아가는 성준이에게 할머니는 엄마나 다름없다.

생활을 책임지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쉴 틈 없었던 할머니들에게도 이번 여행은 큰 선물이었다. 여행이 처음인 혁주(9.초등3)의 할머니 송진희(67)씨는 "아이들이 노는 사이 다녀온 온천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뇨병을 앓는 송씨는 "어쩌면 이번 여행이 손자와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며 말끝을 흐렸다.

해질 무렵이 되자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불과 한나절을 같이 지냈을 뿐인데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대가족같다.

수정이(10.초등4) 남매와 사고로 다리를 다쳐 누워있는 아들까지 돌보고 있는 성순이(70) 할머니는 "일하지 않고 하루 종일 대접만 받으니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거들고 싶어한다. 허리가 많이 아프지만 병원에 갈 돈도, 시간도 여의치 않은 성씨에게는 사랑스러운 손녀가 제일 좋은 약이다.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수정이의 장난기 넘치는 웃음만 보면 아픈 것도 다 잊어버린다.

이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눈빛이 유난히 깊은 진우(9. 초등3)는 '행복.즐거움'이라는 단어를 정성스럽게 써 넣는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아빠 때문에 진우와 할머니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할머니는 나비 그림 위에 "진우가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썼다. 노란 색연필로 나비 그림을 꼼꼼히 색칠하는 할머니의 손길이 유난히 정성스럽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모닥불 앞에서 진우는 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주시고 밥도 해주신 할머니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말도 잘 듣고 돈도 아껴서 하루에 500원만 쓸게요."

이번 프로그램을 주관한 가양4 종합사회복지관의 김영화 과장은 "자갈밭을 뛰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급 운동화보다 고른 땅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정서적으로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원 문의 02-2659-1301.

포천=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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