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묻는다]미래 문화의 모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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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전주 한일장신대 김영민 교수는 '문화 (文化) 인가, 문화 (文禍) 인가' 라는 말로 오늘의 문화현상을 풍자했다. 우리 시대의 문화가 어긋난 방향으로 내닫고 있는데 대한 일침 같은 것이다.

상지대 김정란 교수의 경우 아예 문화 (文化).문화 (文禍) 의 수준이 아니라 일상을 유린하는 소음의 소리, 즉 문화 (聞禍)에 이르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란 교수는 "우린 너무 멀리 갔다. 문화가 인간의 탈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문화의 탈것으로 전락했다. 문화는 날이 갈수록 비인간화하고 있다" 는 말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근대성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 포스트모던 운운했던 유행병에 대한 반성은 여간 절실한 게 아니다. 물적 재화생산이 주축을 이루던 공업시대엔 산업활동과 문화가 별도의 양식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주축으로 전개되는 지식정보화사회에선 문화가 여타 생산행위와 결합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다가 '문화의 세기' 라는 캠페인성 구호에 파묻혀 모든 길이 문화로 통하는 문화과잉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평론가 신현준씨의 시대구분과도 거의 일치한다. '70년대 = 문학의 시대' '80년대 = 사회과학의 시대' '90년대 = 문화의 시대' 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다가오는 미래의 10년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추론컨대 대중문화의 시대 아니면 영상문화의 시대, 그것도 단순히 영화뿐만이 아니라 게임.싱글채널 (서사적 구조의 비디오 아트).애니메이션등을 포괄하는 형식이 될 전망이다.

영상문화는 신세대 담론에서도 거의 예외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의 일방적인 우세현상은 지적기반을 통째로 흔들지 모른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에서 더 이상 창조의 영역이 남아있지 않다는 인식 또한 위험해 보인다. 문화 전반을 휩쓸고 있는 패로디 (풍자) 는 그렇다고 치자. 대중음악에 있어서 샘플링 (디스크자키들이 컴퓨터작업을 한다해서 DJ음악이라고도 함) 은 기존 음악의 요소요소를 차용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다가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예술적 창작력이 그토록 일천한 걸까. 물론 이런 논의가 대중문화와 엘리트문화, 경우에 따라 저급/고급의 이분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주류에 대한 대항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갈 필요성은 절실하다.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정하는 문화는 바로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김영민 교수가 말하는 문화의 문화 (紋和 : 무늬의 어울림) 론이 바로 그런 차원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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