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고법, 폭탄주 회식 후 귀가 중 집 앞 계단에서 추락 업무상 재해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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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들은 맥주에 소주를 섞은 이른바 ‘폭탄주’를 순서대로 돌려 마셨다. 이어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 자리를 가졌다. 2차에서는 업무와 상관없는 이야기도 오갔고 계산은 한 참석자가 개인 카드로 했다.

폭탄주를 12잔 넘게 마신 정씨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자택 앞 2층 계단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정씨는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후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9월 정씨는 사고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졌다. 정씨의 부인이 소송을 이어받아 진행했지만 1심 재판부는 “2차 자리는 직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가 주된 목적이었고, 정씨가 강제로 참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3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1차 회식 참석자 전원이 2차 장소로 옮긴 점 등에 비춰 볼 때 2차 자리가 사적 모임으로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임 성격상 정씨가 자발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 추락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황진구 공보판사는 “사용자의 지배하에 열린 회식 자리에서 음주로 인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산재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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