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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서울대병원 개혁의 기수 박용현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서울대 병원이 달라지고 있다.

국내 최고의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서울대 병원은 그러나 권위주의와 불친절로 세인들의 원성도 잦았던 곳. 그래서 '죽을 병 걸릴 때나 가는 병원' 이라는 조크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런데 요즈음 서울대 병원은 그게 아니다.

병원 현관에서 미소 띄우며 영접하는 도우미를 비롯, 병원 사무직은 물론 의료진까지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서울대 병원이 공기업으로 출발한 지 올해로 20년. 일반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개혁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박용현 (朴容眩.56) 원장을 만나봤다.

- 최근에 서울대 병원을 이런저런 일로 다녀온 이들은 '서울대 병원이 이상해졌다' 고들 해요. '개혁' 의 바람을 몸으로 감지한 이들이 적지 않은 듯 합니다.

"그렇습니까.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사실 요즘 하루에 받는 편지 가운데 5통에 4통 꼴로 감사하다는 편지예요. 그 덕분인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계속 내리막 길이던 환자 수가 12월에 들어서며 다시 예전 상태로 회복됐어요. "

- 일반 병원들에 비해 회복세가 빠르군요. 이쯤이면 '성공적' 이라는 평가를 내려도 될 듯 한데요, 朴원장께서 갖고 계신 경영원칙은 무엇입니까.

"병원 시스템을 공급자 위주에서 사용자인 환자중심으로 변화시키자는 겁니다. 그래서 조직도 피라미드형에서 수평적으로 바꾸고 많은 책임과 권한을 이임했지요. 팀제도를 도입하고 병원경영개선 제안제도를 활성화해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간부직들도 늘 현장을 둘러보게 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고객을 대하던 직원들에게 거울을 나눠주고 업무 중 한 번씩 자기 모습을 살펴보게도 했어요. "

- 무사안일.권위주의 행정에 빠지기 쉬운 공기업인 서울대 병원에 이런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원성이 자자하지 않았습니까.

"안해도 되었던 일을 해야할 때 거부감이 이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예컨대 말 한마디라도 되는 대로 툭툭 던지다가 친절하게 대답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불러온 IMF상황과 호텔식 서비스를 내건 대기업 대형병원들이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데 크게 보탬이 됐습니다. 공기업 의사도 이젠 '철밥통' 이 아닙니다. "

- 의대교수 평가에 홍보비중을 15%나 도입했다면서요. 일부에선 연구.교육.진료가 본연의 업무인 교수를 홍보요원으로 만든다는 비난도 있더군요.

"새시대 교수는 새시대의 사회문화에 맞아야 합니다. 의대교수는 병원의 고위직 직원이기도 하니까 병원경영 주체도 돼야 해요. 홍보는 경영상 중요한 사업이고요. 나아가 매스컴을 통해 국민과 친숙해지고 잘못된 의학상식을 바로잡는데 앞장서는 일은 서울대교수로서 '의무'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 서울대 병원은 늘 '환자가 넘치는 병원' 인데 왜 늘 만년 적자인지요.

"공기업인 탓에 방만한 경영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설립목적이 돈 버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과 의료인에 대한 교육이나 연구 등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사안이 진료에 우선합니다. 또 환자가 늘 많다고 해도 수익성없는 중환자.난치병환자가 주류지요.비현실적인 의료보험수가도 적자경영에 한몫 합니다. 지난해엔 재료비는 오르고 환자는 줄어 정말 힘들었습니다. "

- 그렇지만 지난해 대기업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감원.감봉 태풍이 휘몰아친 것과 대조적으로 서울대 병원은 인건비가 지출의 50%를 차지하는 적자병원이면서 임금동결이나 인위적인 감원도 없어 '무풍지대'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에서 병을 앓던 환자들이 최종적으로 오는 곳인 만큼 파업이 일어나면 큰 문제가 돼 노조와 임금협상을 길게 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능력별로 대우하는 것으로 경영개선을 하려고 합니다. 2000년부터는 비노조원부터 연봉제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시험적으로 98년엔 교수직의 경우 연구업적과 지정진료 수입을 참조해 연말 지급액에서 교수간 1백만원 정도 차등을 두었지요. 앞으로 더욱 확대할 생각입니다. "

- 최근 몇년간 대규모 자본을 토대로 한 대기업의 대형 병원이 많이 생겼습니다. 서울대 병원이 21세기엔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 같습니까.

"지금은 국내 의료계 전체가 대 변혁기입니다. 대기업 병원들보다 자본력은 뒤지지만 의료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력이 충분한 만큼 임상의학연구소 등을 통한 산학협동의 활성화로 필요한 연구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초일류기업과 같은 과학적.합리적 위기관리법을 도입함으로써 세계에서 손꼽히는 병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 전문의료인이면서도 정작 병원경영에 뛰어들기가 무섭게 새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역시 기업가의 자손' 이라고 했을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혹시 두산그룹 가족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것은 없습니까.

"저만 빼고 남자형제들은 모두 기업경영을 합니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경영 얘기를 주로 나눠 귀동냥해온 덕을 봤다고 할까요? (웃음) 하지만 6년 전 기획조정실장을 맡았을 때만 해도 경영의 가장 기본인 대차대조표조차 몰랐습니다. 할 수 없이 형님의 도움을 받아 두산그룹 경영 실무자로부터 경영에 대한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시간 나는 대로 경영에 대한 여러 책들을 독학하고 있습니다. "

- 보직을 맡기 전 국내 최고의 간담도계 외과의사로 활약해 오셨는데 이제 경영자로 변신해 아쉬움은 없습니까.

"저는 사실 평생 간담도계 외과의사로서 외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교수 발령 후 수술도 이 분야만 몰두했었고요. 보직은 내게 외과교수로 한 길을 걷게 해준 병원에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병원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간담도계 외과의사로 돌아갈 겁니다. "

- 현재도 환자 진료나 수술을 하고 계신지요.

"1주일에 하루는 진료에, 하루는 수술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지금도 수술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

◇ 박용현 원장은…

박용현 원장은 국내 의료계에서 손꼽히는 간담도계 분야의 권위자. 경기고 (62년)→서울대 의대 (68년)→서울대병원 수련의 (73년)→서울대 의대 교수 (76년~현재) 의 길을 걸은 전형적인 서울대 의대 맨이다.

서울대 의대 재직중 미국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에서 2년간 간담도계 분야를 수학한 후 돌아와 이에 대한 연구.진료만을 고집, 국내 외과의사 최초의 이 분야 전공자란 기록도 갖고 있다.

한 우물을 판 덕분에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아시아.태평양 소화기병학회 사무총장, 아시아 간.담도.췌장외과학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96년부터 2년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병원 경영에 몸담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서울대병원 기획관리실장을 맡으면서. 이후 진료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6월 원장에 올랐다.

두산그룹 초대회장인 고 (故) 박두병 (朴斗秉) 씨의 6남1녀 중 유일한 의사로 작고한 부친을 말년에 거의 10년간 모시고 살며 손수 병수발을 들어 효심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인 엄명자 (嚴明子) 씨와 세 아들을 두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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