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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노조 활동, 친정 관리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산별노조인 K노조의 K부위원장은 유력한 차기 위원장 후보였다. 규모 면에서나 응집력 면에서 출신 기업이 빵빵한 덕이었다. 재선을 한 위원장이 한 명도 없는 기업에서 재선까지 하면서 6년에 걸쳐 위원장직을 수행한 데 이어, 3년에 걸친 산별노조 선임 부위원장직까지 수행한 그의 비전은 산별노조를 거쳐, 전국단위 ㅇㅇ노총 위원장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친정에서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자신이 떠나오면서 옹립했던 위원장이 임기가 다하면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반대파가 승리하는 이변이 벌어진 때문이었다. 더욱이 새 위원장은 그를 무척이나 싫어하던 후배였다!

그 후배도 본래 참모로 데리고 있던 친구였다. 그러나 일에 대한 욕심이 과도해 주변과 마찰을 빚는 것이 우려돼 산별노조로 파견을 보내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잠시 머리나 식히고 돌아오라고 한 조치였는데, 자신을 ‘토사구팽’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하는 것 아닌가? 결국 2달여 동안 마찰을 빚은 끝에, 미안하지만 그 친구를 현업으로 복귀시키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노조 내에 딱히 파벌이 없던 상황에서 그 친구는 하나둘씩 지지자를 규합하더니 결국 지도부에 도전하는 강력한 대항세력으로 떠오르는 것 아닌가? 노조 내의 유일한 반지도부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그 세력이 별로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도 후배 위원장도 선거에서 질 것이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의 영남권 표와 여직원 표를 결집시킨 그는 ‘어! 어!’ 하는 사이에 질풍노도처럼 세력을 키우더니 마침내 판세를 뒤엎고 말았다. 호남권 표와 남직원 표에 의존하던 그와 후배 위원장의 지지기반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가 발상의 전환을 한 결과였다. 물론 부동표도 그쪽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허무하게 사내 제1세력의 아성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출신 기업의 위원장에 반대파가 당선되었다고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일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취임하자마자 새 위원장이 한 일은 K부위원장에 대해 나쁜 소문을 산별노조는 물론 타 지부 위원장들에게까지 퍼뜨린 것이었다. 열심히 차기 위원장 선거를 목표로 뛰던 K부위원장으로서는 여간 맥 빠지는 일이 아니었다.

당시 여기저기 틈나는 대로 지지를 호소하고 다니던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대략 이랬다. ‘당신이 그랬단 말이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먼저 해명하고 나서는 것도 우습고, 해명을 해도 별로 믿어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 결국 그 분위기에 지치고 만 그는, 중도에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친정의 반란! 그것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3년의 산별노조 부위원장을 끝으로 그의 노조 활동도 끝나고 말았다. 현업으로 되돌아간 그는 이미 회사 내에서는 노병이었고,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사용자 신분으로 전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고위 관리자로 노조와 대면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새 위원장의 눈 밖에 난 반대파의 수괴(?) 아니던가?

여러분은 K부위원장의 경험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내가 발견한 가장 큰 특징은 우리나라의 노조가 강한 연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학교 출신, 같은 지역 출신, 같은 부서 출신, 같은 회사 출신이라는 점이 단위 노조는 물론, 산별 노조, 전국단위 노조에 이르기까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가장 쪽수가 많은 학교 출신, 지역 출신, 부서 출신, 기업 출신이 노조 지도부를 장악하곤 한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정도면 노조 내 정치도 현실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연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연고주의를 답습하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오히려 연고주의가 기본이고, 정치 분야도 그 영향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연고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친정을 잘 관리하는 일이다. 내 정치활동의 시발점이 된 그 기반에 늘 물을 주고 퇴비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일을 게을리 하다보면, K부위원장처럼 일순간에 친정이 사라지면서 허공에 떠버리는, ‘공중부양’ 상황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의 물갈이도 상당수는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친정에서 누군가 반란을 일으켜서!

그리고 반란은 꼭 내가 정점에 거의 다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 일어나곤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려면 논두렁 정기라고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도는 지도 모를 일이다. 똑 같은 죄를 짓고도 누구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누구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걸 보면, 장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모든 걸 운 빨’에 돌리면 인생이란 것이 너무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극적인 반전도 일어나는 터라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친정은 평상시에 관리를 잘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물론, 너무 잘 나간다고 초라해 보이는 친정을 홀대하다가는 ‘당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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