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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브라질은 먼 나라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중국이 문호를 개방할 즈음 장사꾼들에게 중국만큼 매력있는 시장은 없었다.

인구의 절반이 이쑤시개 한개씩만 사용해도 6억개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마른 오징어나 갈비를 뜯는 식성이 아니어서인지 아직 이쑤시개 재벌은 나오지 않았다.

멀리 아프리카까지 시장조사에 나서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하지만 7억명의 아프리카인에게 샌들을 신기려던 구두회사 최고경영자 (CEO)에게 올라온 두개의 보고서는 그를 헷갈리게 했다.

보고서 A.아프리카는 모두가 맨발이라 시장성이 무한 (無限) 함. 보고서 B.아프리카는 맨발이 기본이라 시장성이 전무 (全無) 함.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좁아지고 있다지만 우리는 가까운 이웃과 먼 대륙의 시장과 문화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경제위기로 재외공관 축소 바람이 불자 폐쇄대상 1호가 아프리카와 중남미지역 공관들이었다.

두 큰 대륙은 그만치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브라질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자율에 맡겨진 레알화가 큰 폭으로 평가절하됐다.

이자율을 올려 통화를 지키려다 주저앉은 꼴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소방차가 이미 90억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재수혈이 다급하다.

수출을 살려 실업을 막고 이자율을 낮추려 하지만 썰물처럼 빠진 시장에 대한 신뢰회복은 시간이 걸린다.

브라질 사태는 먼 곳에서 일어난 강건너 불인 듯싶지만 아르헨티나에 번지고 최악의 시나리오인 중국의 위안 (元) 화 평가절하를 촉발해 환란이 아시아로 되돌아 온다면 세계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브라질 위기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브라질 경제위기를 쇼크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시각이다.

어거지로 열린 경제청문회에서 '맑은 하늘 날벼락' 론이 나온 것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브라질은 이미 IMF 신탁체제에 들어간 나라임을 잊은 탓이다.

한국경제는 '다 죽은 목숨' 이 돼서야 긴급수혈을 받았지만 브라질은 IMF처방과 협정까지 끝난 지 두달도 넘은 나라다.

브라질 자동차 시장의 선두주자인 폴크스바겐은 해고 대신 임금 15%를 삭감키로 이미 지난달 노사간에 합의해 놓고 있을 정도다.

제품보다 실업자를 양산해내면 아무리 공장을 돌려 봐야 물건을 살 사람이 없으리라는 판단이 앞선 때문이다.

그만치 브라질 위기는 프랑코 총통체제가 쓰러진다는 예언만큼이나 예고된 위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태국이 아니라고 버티다 당한 반면 브라질은 한국에서 단단히 배운것 뿐이다.

환란이 닥치기 1년전부터 바깥세계가 잇따른 경고를 띄웠음에도 벼랑 끝까지 간 벽창호이고 보면 준비된 브라질 위기를 충격으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 스스로가 놀랍지 않은가.

둘째는 먼 대륙의 신흥시장에 대한 평소의 무관심이다.

웹페이지에 수록된 한국 언론기관의 방대한 국제보도자료를 훑어보면 세계화를 부르짖던 기간 (94~98년) 임에도 브라질 기사는 단 7쪽 뿐이다.

하지만 IMF 직후 우리나라 학생들이 외제 학용품을 쌓아 불사르는 장면이 CNN뉴스를 통해 지구촌에 비쳤을 때 아시아 수입품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것이 브라질 무역관광장관이었다.

브라질은 우리에게 멀고 작은 시장일지 몰라도 남미 경제의 엔진인 브라질이 뒤뚱하는 날 미국 경제가 콜록거릴지도 모른다.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는 흑인을 앞지른다.

남미에서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 나라에 대한 우리의 수출은 2% 미만이지만 미국 (15%).일본 (10%)에 비해 라틴아메리카시장이 16%를 차지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브라질은 단순한 인구와 자원대국에 머무르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문화 흐름을 이끄는 리더다.

셋째, 브라질 경제위기는 그들의 관치 (官治) 경제의 일시적 성공이 가져다준 자만 (自慢) 이 부른 자업자득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공통점이 있다.

인플레가 한때 연2천5백%까지 치솟자 철저한 통화공급통제와 시장개방으로 인플레를 한자릿수로 끌어내림으로써 아마존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그들이다.

그러나 인구의 10%가 국부 (國富) 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부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지나친 외채를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경제의 펀더멘털 (기초) 은 덮어두고 엘도라도의 꿈에 취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꼴이다.

부패와 관치경제에 기인한 정치 리더십의 한계였다.

그같은 정치부패가 전.현직 대통령간의 해묵은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 위기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정쟁에 휘말려 경제위기에 대한 뻔질난 경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치의 무능과 부채가 성공의 발목을 되잡는다면 위기에 대한 경고도 쓸모가 없다.

국난을 계기로 정치개혁을 벼르고 있는 우리에게 브라질이 던져주는 또 하나의 산 교훈이다.

최규장 재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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