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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도 못한 제주지사 주민소환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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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태환 제주지사(右)가 26일 실시된 선거에서 투표율 미달로 직무복귀가 확정된 뒤 선거사무실을 지키던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명분으로 벌인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불발로 끝났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청구에 따라 26일 오전 6시~오후 8시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벌인 주민소환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효 처리됐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도민은 4만 6000여 명으로 전체 유권자(41만9504명)의 11%에 불과했다. 투표 비용은 19억2600만원이 들었다.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된 2007년 5월 이후 광역단체장을 대상으로 주민투표가 실시되기는 처음이었다. 이번 투표율은 제주 지역 사상 최저다. 그동안 역대 제주지역 선거·투표 사상 최저 투표율은 2005년 7월 ‘4개 시·군 폐지’를 묻는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로 당시 투표율은 36.7%였다.

선관위는 “투표자가 유권자의 3분의 1 미만이면 개표를 할 수 없다”는 주민소환법 규정에 따라 개표를 하지 않았다. 주민소환투표 발의로 6일부터 직무가 정지됐던 김 지사는 곧바로 업무에 복귀하게 됐다. 김 지사는 “제주도민들의 현명한 선택에 감사드린다”며 “갈등과 분열을 털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민소환투표 무엇을 남겼나=주민소환운동본부는 6월 말 5만1044명의 유효 서명인을 확보, 제주도선관위에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했다.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일대에 조성하는 해군기지 반대가 주된 이유였다. 해군은 2014년까지 9537억원을 투자해 강정마을 일대 48만㎡에 함정 20여 척과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에 계류할 수 있는 부두와 군·가족 7500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부속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성격의 한반도 남방의 전략기동함대 기지다. 김 지사는 이 국책사업을 지지해왔다. 이를 빌미로 소환운동 측은 소환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투표 결과 제주도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개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국책사업은 소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소환운동 측은 제주도를 ‘갈등의 섬’으로 비쳐지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제주도 일부 공무원은 “괜한 일을 벌여 엄청난 제주도 예산만 허공에 날려보냈다”고 지적했다.

주민소환의 대상과 범위를 정하도록 주민소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신라대 박재욱(행정학) 교수는 “소환투표 청구사유를 법령 위반이나 직권남용·직무유기 등으로 제한하는 등 소환 대상과 범위를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표가 끝나자 갈등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태현 제주도민간사회단체협의회 대표는 “이제 갈등의 앙금을 풀고 투표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며 “소환운동 측도 도민 화합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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