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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인 "숭례문 가림막 문구쓸 때 가장 마음 아팠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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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박성희

영묵(永墨) 강병인(47)작가의 서울 상수동 작업실에는 화선지 냄새와 묵향이 진하게 퍼져 있었다. 작업실 곳곳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손글씨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강병인, 그는 국내에서 손꼽는 캘리그라퍼(calligrapherㆍ손글씨 예술가ㆍ‘술통’ 대표)다. 2009충무로 영화제의 ‘충무로’, 숭례문 가림막의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 그대로…’, 소주‘참이슬’,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대왕세종’. 그의 이름 석 자를 설명하는 대표작이다. 강 작가는 24일부터 열린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타이틀 로고를 제작했다. 25일 그를 만나 ‘감성이 살아나 숨 쉬는 글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충무로 석 자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영화제 로고로 쓰일 ‘충무로’라는 글자로 쉽지 않은 작업을 했다. 의미를 해석해 글꼴로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뒤집어 글꼴의 특징을 잡기로 했다. ‘충’은 위로 뻗어나감을 형상화했다. 초성 ‘ㅊ’은 사람 얼굴이 된다. 중성과 종성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심이 된다. 사람이 힘차게 도약하는 모습이다. 다음은 ‘무’. 이 글자는 감흥이 없다.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아직 영화제가 3회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ㅜ’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렸다. ‘로’. 봉황 한 마리가 비상을 꿈꾸는 것을 그려냈다. 대한민국 대표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하는 세 글자다. 두 달 정도 매일 고민하며 고쳐 쓰기를 300번, 화선지가 수북이 쌓일 정도로 조금씩 모양을 바꿔 만들었다.”

-숭례문 가림막 글씨를 쓸때 감회가 특별했을 것 같은데..


“숭례문 가림막 문구를 쓸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숭례문이 불타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슬픈 순간이었다. 중구에서 가림막에 넣을 글씨를 써달라는 의뢰가 왔다. 부담감이 컸다. 여러 사람이 그곳을 볼텐데 내 부족한 필력이 치유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숭례문이 빨리 복구돼 옛날의 그 모습, 아름답고 늠름한 풍채가 드러나길 원했다.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 그대로…’ 이 글씨를 쓰는 사흘동안 마음가짐을 엄숙하고 순수하게 가지려 노력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경우 어렵지 않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존재다. 엄마의 이미지가 소와 비슷했다. 쌍비읍의 ‘뿔’을 소의 뿔로 형상화했다. 이 글씨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드라마 ‘대왕세종 ’이었다. 소위 나는 한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훈민정음을 주신 세종대왕을 네 자로 표현해야 했다. 훈민정음은 글꼴이 직선과 곡선으로 돼 있는 기하학적 무늬다. 그러나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게 변형시킬 수 있게 돼 있다. 알파벳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예술로 재현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의 기본 정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의 강인함과 부드럼움이 공존하는 느낌의 서체로 썼다.

-언제부터 손글씨를 쓰기 시작했나.

“중학교때 서예를 배웠고 대학에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2002년 전까진 디자인 회사도 운영하고 업계 잡지도 발행하는 등 광고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했었다. 그러던 도중 한글을 디자인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고민했다. 대부분의 로고 글씨는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에 경직돼 있다. 인간적인 감성도 없다. 사안이나 상품의 성격을 드러내는 기존의 디지털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손글씨는 철학을 그려낼 수 있다. 02년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손글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한 출판사가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표지를 바꿔 재출간한다며 내게 손글씨를 의뢰했다. 아무 이미지 없이 오직 내 글씨로만 채운다고 했다. 리뉴얼하기 전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작품 의뢰가 꾸준히 증가했다.”

-캘리그라피 시작 당시 어려웠던 점은.


“사람들의 인식이 ‘왜 돈 주고 손글씨를 사오느냐’였다. 아무나 한글을 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열심히 뛰어다니며 수요자에게 한글도 철학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글씨에 표정과 감성이 녹아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는 평이 입소문을 통해 퍼졌다. 06년부터 영화나 신문, TV광고 등에서 손글씨 노출빈도가 늘어났다. 몇몇 제품이 흥행에 성공해 ‘손글씨=예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그중에 하나가 ‘참이슬’이다. 당시 수차례 쓴 참이슬 시안이 있었는데 1차로 선정된 것이 1년량 쓰였고 07년 2차 시안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나뭇가지로도 글씨를 쓴다고 들었다.


“지난해 말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의 속 타이틀을 맡게 됐다. 스님의 삶 자체는 자연 속에 녹아있다. 늘 쓰던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산을 다니며 주워왔던 나뭇가지로 글씨를 썼다. ‘녹슬지 않는 삶’이라는 문구가 아주 잘 나왔다. 자연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할까. 법정스님이 매우 만족해 하셨다고 들었다. 붓, 나뭇가지 뿐 아니라 칡뿌리, 대나무, 젓가락, 동아줄 등이 모두 필기구로 쓰일 수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이 준비돼 있나.


“10월 말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그곳에서 오랜 기간 한식당을 운영하신 분이 있는데 식당 옆에 갤러리 ‘예감’을 오픈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쓰인다고 해서 나를 초청했다. 외국인 뿐 아니라 재미교표 2,3세에게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게 돼 돼 기쁘다. 내년 봄쯤엔 한글이 그려진 각종 상품을 내놓으려고 한다. 조금 더 길게 내다본다면 각 가정에 한자 대신 한글 가훈이 걸릴 수 있게 활동 폭을 늘리고 싶다.”

그의 아호는 ‘영묵’. 중학생 때 자신이 붙였다고 한다. ‘영원히 묵과 함께’라는 뜻. 정신적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삶을 좇아 평생 붓을 놓지 않고 글씨만 쓰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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