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박성희
-충무로 석 자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숭례문 가림막 글씨를 쓸때 감회가 특별했을 것 같은데..
“숭례문 가림막 문구를 쓸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숭례문이 불타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슬픈 순간이었다. 중구에서 가림막에 넣을 글씨를 써달라는 의뢰가 왔다. 부담감이 컸다. 여러 사람이 그곳을 볼텐데 내 부족한 필력이 치유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숭례문이 빨리 복구돼 옛날의 그 모습, 아름답고 늠름한 풍채가 드러나길 원했다.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 그대로…’ 이 글씨를 쓰는 사흘동안 마음가짐을 엄숙하고 순수하게 가지려 노력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경우 어렵지 않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존재다. 엄마의 이미지가 소와 비슷했다. 쌍비읍의 ‘뿔’을 소의 뿔로 형상화했다. 이 글씨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드라마 ‘대왕세종 ’이었다. 소위 나는 한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훈민정음을 주신 세종대왕을 네 자로 표현해야 했다. 훈민정음은 글꼴이 직선과 곡선으로 돼 있는 기하학적 무늬다. 그러나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게 변형시킬 수 있게 돼 있다. 알파벳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예술로 재현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의 기본 정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의 강인함과 부드럼움이 공존하는 느낌의 서체로 썼다.
-언제부터 손글씨를 쓰기 시작했나.
“중학교때 서예를 배웠고 대학에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2002년 전까진 디자인 회사도 운영하고 업계 잡지도 발행하는 등 광고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했었다. 그러던 도중 한글을 디자인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고민했다. 대부분의 로고 글씨는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에 경직돼 있다. 인간적인 감성도 없다. 사안이나 상품의 성격을 드러내는 기존의 디지털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손글씨는 철학을 그려낼 수 있다. 02년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손글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한 출판사가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표지를 바꿔 재출간한다며 내게 손글씨를 의뢰했다. 아무 이미지 없이 오직 내 글씨로만 채운다고 했다. 리뉴얼하기 전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작품 의뢰가 꾸준히 증가했다.”
-캘리그라피 시작 당시 어려웠던 점은.
“사람들의 인식이 ‘왜 돈 주고 손글씨를 사오느냐’였다. 아무나 한글을 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열심히 뛰어다니며 수요자에게 한글도 철학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글씨에 표정과 감성이 녹아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는 평이 입소문을 통해 퍼졌다. 06년부터 영화나 신문, TV광고 등에서 손글씨 노출빈도가 늘어났다. 몇몇 제품이 흥행에 성공해 ‘손글씨=예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그중에 하나가 ‘참이슬’이다. 당시 수차례 쓴 참이슬 시안이 있었는데 1차로 선정된 것이 1년량 쓰였고 07년 2차 시안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나뭇가지로도 글씨를 쓴다고 들었다.
“지난해 말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의 속 타이틀을 맡게 됐다. 스님의 삶 자체는 자연 속에 녹아있다. 늘 쓰던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산을 다니며 주워왔던 나뭇가지로 글씨를 썼다. ‘녹슬지 않는 삶’이라는 문구가 아주 잘 나왔다. 자연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할까. 법정스님이 매우 만족해 하셨다고 들었다. 붓, 나뭇가지 뿐 아니라 칡뿌리, 대나무, 젓가락, 동아줄 등이 모두 필기구로 쓰일 수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이 준비돼 있나.
“10월 말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그곳에서 오랜 기간 한식당을 운영하신 분이 있는데 식당 옆에 갤러리 ‘예감’을 오픈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쓰인다고 해서 나를 초청했다. 외국인 뿐 아니라 재미교표 2,3세에게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게 돼 돼 기쁘다. 내년 봄쯤엔 한글이 그려진 각종 상품을 내놓으려고 한다. 조금 더 길게 내다본다면 각 가정에 한자 대신 한글 가훈이 걸릴 수 있게 활동 폭을 늘리고 싶다.”
그의 아호는 ‘영묵’. 중학생 때 자신이 붙였다고 한다. ‘영원히 묵과 함께’라는 뜻. 정신적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삶을 좇아 평생 붓을 놓지 않고 글씨만 쓰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