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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사법개혁,대통령이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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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전 법조비리로 지난 한 주는 긴장과 탄식, 분노와 부끄러움의 나날이었다.

그것은 대법원장의 말처럼 법조인이 법률기술자나 법률상인으로 전락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법조인을 기술자나 상인에 비유하는 것은 차라리 상업과 기술로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

전관예우.브로커.향응접대로 이어지는 비리 유착은 마피아나 법비 (法匪) 의 수준으로 지탄받을 사안이다.

이런 비리들이 의정부와 대전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순호와 이종기는 우발적으로 걸려든 것일 뿐이다.

법조의 물을 흐려놓은 것은 소수의 미꾸라지들이 아니다.

오히려 비리의 그물망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로부터 '왕따' 당하면서도 양심을 걸고 거듭 다짐해야만 하는 풍토였지 않았던가.

이미 의정부 법조비리에서 개탄과 함께 많은 해법이 주장됐다.

그 해법이 진지하고 확실했던가.

그 때 이뤄진 것은 징계와 처벌이었다.

더 말한다면 법관과 검사의 윤리강령 선포까지는 나간 셈이다.

그러나 비리혐의가 포착돼도 변협의 징계 수준은 내 식구 감싸주기 정서에 의해 늘 완화됐다.

이종기 변호사만 해도 과태료란 경미한 제재로 변협의 징계를 통과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법조인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전관예우와 브로커비리가 결정적으로 만나는 지점은 형사사건이다.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근무했던 곳에서 2년간 형사사건의 수임을 제한하자는 규정이 제기됐다.

판.검사들은 장소와 시간.사건내용을 이렇게 제한하는 최소한의 조치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전관예우란 현상 자체가 없다고 강변했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규정이란 논지를 폈다.

결국 법무부 주도의 변호사법 개정안에 전관예우 금지조항은 포함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회로 넘어간 변호사법 개정안도 법사위에 계류된 채 잠자고 있다.

그 결과 이종기 사건이란 부메랑이 다시 법조를 덮쳤다.

법조계는 제도개혁을 통해 수임료 삭감의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주기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브로커와 변호사, 거기에 경찰.검찰의 유착 속에 수많은 형사사건이 국민의 신체를 인질로 삼아 석방금을 흥정하는 부도덕한 게임으로 전락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의 현실 앞에는 어떤 정의의 주장도 견뎌낼 수 없다.최소한 수임제한 규정은 반드시 입법화돼야 하며, 모든 형사피의자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수임내역과 수임료를 투명화하는 것이다.

변호사의 활동은 공적인 이상 그 실적이 공개 열람될 수 있어야 한다.

사건 의뢰인의 절반이 영수증을 교부받지 못하는 현실도 반드시 타개돼야 한다.

이 기회에 미국처럼 수임료 계좌를 등록하고 그 계좌로만 수임료의 입.출금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될 필요가 있다.

법조 집단은 자신의 독과점적 특혜, 고소득을 침해하는 어떤 사법개혁도 일치단결해 저지시켜 왔다.

김영삼 (金泳三) 정권에서의 전면적인 사법개혁 구상은 사법시험 합격자수의 증원안만 간신히 통과시킨 채 보다 본격적인 개혁의 길은 좌절됐다.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세 관문, 즉 법무부.법원.국회 법사위에 포진한 법조인들의 집단 이기심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에게 '진퇴를 걸고 법조비리를 처리하라' 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법무부장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은 검찰을 독려해 대전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소추를 해내는 것뿐이다.

법조인 증원에 앞장서 반대논리를 펴고, 변호사법 개정안에서 전관예우 금지조항을 삭제시키고, 자신이 주창해마지 않았던 특별검사제를 번복하는 장관에게서 우리는 법조 및 검찰 이익의 수호자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 정권에서 체험했듯이 전면적 사법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다.

대통령에의 권력 집중을 선호하지 않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만은 전체 사회의 개혁적 힘과 대통령의 지속적 의지가 함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개혁에 진퇴를 걸 각오를 해야 하는 분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법조비리를 척결하고 선진적 법치주의를 이끌어낼 근본개혁에 임하시라' 고 조언하고 싶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중도하차한 전면적 사법개혁을 현 대통령은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인가.

두 대통령의 의지와 역량의 게임을 국민적 참여 속에 주시할 일이다.

한인섭 서울대교수 형사법 ishan@plaza.snu.ac.kr

◇ 필자약력 ▶40세 ▶서울대 법대졸.서울대 법학박사 ▶경원대교수 ▶서울대 법대교수 (현) ▶저서 : '한국 형사법과 법의 지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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