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이문열 부자간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49년 전 서른여섯의 한 젊은 가장 (家長) 이 만삭의 아내와 어린 4남매, 그리고 늙은 어머니를 적 점령지에 버려두고 이상의 공화국을 찾아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그 젊은이는 여든다섯의 고령이 돼 자신이 떠날 때보다 훨씬 나이 먹은 남쪽의 아들에게 안부를 물어 왔습니다. 그는 함경북도 어량군 부호리에 거주하는 이원철 (李元喆) 이고 그의 아들은 바로 저입니다. "

작가 이문열 (李文烈) 이 북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는 간곡한 사연을 북한 김정일 (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공개서한 형식으로 보낸 내용 중 일부다.

작가는 두편의 편지를 썼다.

'아버님전 상서' 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생이별한 남쪽의 가족사연을 적고 있고 '김정일동지께' 보내는 편지에선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줄 영단을 북한 최고통치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작가 자신만의 특전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 모두의 한을 푸는 계기로 삼자는 제안까지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올 한해를 남북이산가족상봉의 해로 삼기 위한 당국자간 대화를 촉구했고 실질적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언론을 통한 생사확인과 안부교환이다.

이미 북은 지난해부터 평양방송을 통해 '안부' 방송을 시작했고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확인.통보작업을 한 바 있다.

남북 언론이 앞장서 이산가족의 사연을 싣고 서로가 확인.통보를 한다면 1차적 생사확인은 해결될 수 있다.

남북 언론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참여해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장 (場) 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제3국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상봉사업을 양성화하는 방안이다.

정부도 이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현재의 비싼 상봉비용을 양성화할 때 오는 서민층 실향민의 상처와 좌절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북쪽도 인도적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담이 될것이다.

이문열씨 지적대로 이산가족의 슬픔을 이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남북 모두에 부끄러운 일이다.

이산 1세대 생존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60여만명으로 집계되는 이들 1세대의 상봉을 늦춰선 남북 모두 인륜과 천륜을 어긴 죄업을 후세에 남기게 될 것이다.

이 죄업을 지지 않기 위해선 남북 당국이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북의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남쪽 지원을 받아들이고 이산가족문제는 조건없이 추진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가장 원칙적 방법이다.

이미 정부는 50만t의 비료와 농약지원을 제안한 바 있다.

무려 1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지원이다.

북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산가족면회소를 금강산이든 제3국이든 설치하는 게 이산가족뿐 아니라 남북문제를 푸는 첩경이다.

이미 서독은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동독에 6백억마르크 경제지원을 했던 선례가 있다.

경제지원과 가족상봉은 거래가 아닌 유무상통 (有無相通) 의 민족서로돕기운동 차원이다.

한 작가만의 애틋한 사부곡 (思父曲) 이 아니라 남북 모두의 절실한 염원인 이산가족문제를 북한은 당국자간 대화에 나서 풀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