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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의 놀며 말하며]'다윗의 도시'展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저는 '다윗의 도시와 성서의 세계' 라는 전시회가 있기에 첫날 무조건 갔습니다. 왜 그렇게 허겁지겁 갔냐고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믿거나 마시거나 십여 년 전 저는 미국에 체류하면서 성서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소위 신학대학엘 4년간이나 다녔거든요. 처음 성서를 공부할 때는 참 웃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나라 역사라고는 '태정태세 문단세' 정도밖에 모르는 한국 촌놈이 느닷없이 다윗과 솔로몬, 신명기서.이사야서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책들을 공부해야 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창피하지만 저는 성서가 곧 이스라엘의 역사책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기왕에 발을 들여놓은 학교, 시험을 치르고 졸업장을 받고 음악목사 면허증을 받자니 공부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정작 공부를 할 때는 성서에 관련된 유물들을 제 눈으로 본다는 걸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러려면 중동 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되는데 그때는 가난한 유학생 시절이었으니까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 내가 살고 있는 한국 땅에서 그네들의 유물들을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어찌 흥미가 안 당기겠습니까. 제가 전시장에 들어설 때는 저 나름의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사해의 두루마리' 를 똑바로 봐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문 광고를 통해서 온갖 유물들이 몽땅 전시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고고학자가 아니니까 그런 것에 일일이 감탄할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제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은 제가 한때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서 제법 아는 것, 사해의 두루마리들이었습니다.

신약성서를 배우는 신참 학생들한테는 반드시 사해의 두루마리가 커다란 과제로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성서의 원본 비슷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수천 년 토굴 속에 묻혀있다가 불과 50년 전쯤에서야 처음으로 발굴되었다는 물건들입니다. 사해의 두루마리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미궁의 학설들을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추가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가령 그쪽에는 원래부터 유태교.힌두교.마호메트교.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잡다한 종파들이 존재했는데 나중에 기독교가 그 중에서 두드러졌다든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파의 문서 속에도 예수의 산상수훈 비슷한 내용들이 얼마든지 실려 있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급기야 저는 '한국 청년이 본 예수' 라는 매우 긴 졸업논문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요한이나 예수는 과연 누구냐. 그들의 행적은 과연 소설이냐, 아니면 실화냐. 그런 따위로 제법 논란을 벌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원고는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당시 출판사 사장이셨던 조정래 선생과 당신의 부인되시는 시인 김초혜 두 분으로부터 "기막히게 잘 쓴 책이다.

한국 심성으로 쓴 최초의 신약해설서다" 라는 공허한 칭찬만 듣고 그 책은 그것으로 그만 절판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웬 미련이 남아서인지 터벅터벅 전시장엘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시장 초입부터 놀랐습니다. 그저 오래된 기왓장이나 항아리나 동전 따위, 혹은 문서 쪼가리들을 어쩌면 저리도 정교하고 우아하고 웅장하게 진열을 해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맨날 쫓겨만 다니던 사람들인데, 맨날 남들한테 괄시나 핍박만 받던 사람들인데, 건국의 모양새를 갖춘 지가 불과 몇십 년도 안되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저는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네의 팔만대장경은 잘 보관되어 있는지, 원효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공연히 마음만 바빠졌습니다.

<가수.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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