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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전문 사진관이 뽑은 포토제닉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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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혜 씨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이 작아서 사진발이 잘 받습니다. 명함판 크기의 작은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옵니다.”


지난 1984년부터 25년간 스타들의 사진을 찍어온 서울 여의도 ‘쌍마스튜디오’의 황수연(48) 사장은 최고의 사진 모델로 탤런트 황신혜 씨를 꼽았다. 황 사장은 서울 여의도 MBC방송사 앞 네거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TV 드라마 소품으로 쓰일 인물 사진을 찍어 왔다. 그를 모르는 연예인이 없을 정도로 연예인들에게 그는 친숙한 존재다.

황 사장의 사진관 벽에는 ‘이산’ ‘찬란한 유산’ ‘내 이름은 김삼순’ 등 TV 인기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와 제작진이 드라마 종영 기념으로 찍은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드라마에서 사진은 중요한 소품이예요. 가족사진은 기본이고 극중 인물이 결혼하면 결혼식 사진이 있어야 하고, 사망하면 영정 사진이 있어야 하죠.”

그는 드라마 중간에 출연자가 갑자기 교체돼 컴퓨터로 합성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드라마에서 가족으로 분장한 출연자들이 드라마의 소품으로 쓰일 가족 사진을 찍어요. 그런데 사진을 찍은 뒤 갑자기 작가가 캐스팅을 바꾸거나 출연자가 사정이 생겨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경우 사진을 다시 찍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찍으려면 출연자 모두가 모여야 하는데 다들 스케줄이 있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럴 땐 컴퓨터로 교체된 출연자의 얼굴을 합성합니다. 디지털 사진이 도입되기 전엔 가위로 오려내고 덧붙였어요. 요즘은 컴퓨터 기술이 좋다 보니 합성을 해도 보통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필름을 넣어 사진을 찍던 시절, 사진을 분실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한 번은 퀵서비스로 사진을 부친 적이 있었는데 택배 기사가 한강을 건널 때 사진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어요. 필름도 함께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사진을 찾을 길이 없어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사진을 분실해도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 있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 사장이 “보여줄 게 있다”며 출입문 쪽으로 안내했다. 양쪽의 쇼윈도에 4X5㎝ 크기의 증명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얼핏 타일로 봤는데 가까이 가니 스타들의 증명사진이었다. 그동안 찍은 1200여명의 스타들 사진이다. 아래 선반 쪽에는 세상을 떠난 스타들 사진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고 홍성민, 최진실, 임성민, 이낙훈, 김무생, 이은주, 이주일, 정다빈, 양종철 등의 얼굴이 보였다.

벽면 한쪽에 고 여운계씨의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셨던 거 같아요.”

황 사장은 여운계씨가 지난 2월 25일 가족사진을 찍으러 온 날을 회상했다. 여씨는 남편과 아들·딸, 사위·며느리, 4명의 손자·손녀를 데리고 와 “여태 가족사진 하나 없어 오늘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여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뒤 얼마 후 여운계씨는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게 이 사진을 마지막 선물로 남긴 채.

드라마 소품용 사진을 찍게 된 계기를 묻자 황 사장은 “80년대 초반 MBC 사원 출입증에 쓰일 사진 사업권을 따낸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MBC 방송 관련 사진을 찍게 됐고 “사진사가 젊고, 약속한 날짜에 맞춰서 사진을 뽑아 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KBS와 탤런트협회에서도 그에게 일을 맡겼다.

“지금까지 5만 점의 드라마 관련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 다 보시려면 열흘은 걸릴걸요. 연예인 사진이 일반인보다 찍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배역에 맞게 알아서 자세를 취해주니까요.”

황 사장은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에 보면 사진사 나오는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진사 단역을 수도 없이 맡았습니다.”

실제 사진사가 사진사 연기를 한 셈이다.

그는 고인이 된 배우들의 젊었을 적 사진을 찾아서 2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아주 좋아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젊었을 때 이렇게 멋지셨구나’하면서 감격해하더군요.”

황 사장은 다락방 벽면에 있는 창고를 열어 누런 서류 봉투를 보여줬다. 봉투 겉면에는 코미디언 ‘이용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창고에는 스타들의 필름이 담긴 봉투와 사진첩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한번씩 꺼내 봅니다. 기회가 되면 전시회를 열어 보고 싶습니다.”

황 사장에게 ‘사진이 뭐냐’고 물었다.

“사진은 역사이자 추억입니다. 찍을 수 있을 순간까지 사진을 찍을 랍니다.”

그는 모처럼 가족과 휴가를 떠났다가 방송국에서 급하게 사진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 급히 돌아왔다고 했다.

“전 국민이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사진인데 휴가보다는 사진이 더 중요하잖아요.”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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