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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아름다운 기부 ‘300억 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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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국내 기부문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괄목할 만한 사례들이 나타나 주목된다. 얼마 전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 회장과 부인 김삼열 여사가 한국의 과학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달라며 300억원을 KAIST에 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회장 부부는 오래전부터 재산은 자식에게 남겨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국가 장래를 위하여 과학기술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 깊은 뜻에 감동할 뿐이다. 특히 KAIST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KAIST는 이 돈으로 ‘김병호-김삼열 IT융합연구동’을 신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서는 IT(정보기술)를 한 단계 더 올려줄 신기술을 개발할 것이다. 연구가 막히면 교수와 학생들은 건물 1층에 있는 김병호-김삼열 동상에 와 털어놓을 것이다. “지금 막혀 있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요?”

거액을 대학에 기부한 사례는 2001년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의 300억원으로 시작된다. KAIST는 이 돈으로 ‘정문술빌딩’을 짓고 융합 연구를 위한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한의학 박사 1호 류근철 박사가 2008년 KAIST에 기부했던 578억원은 세종 신도시에 조성 중인 ‘류근철 캠퍼스’에 사용되고 있다. 태양사 송금조 회장은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331억원을 사회에 내놓고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미국의 부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학에는 연구비와 장학금에 여유가 생기고, 돈 없는 우수 학생도 공부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두드러지기 시작한 기부문화가 잘 정착됐으면 한다. 우선 기부문화의 선구자들이 함께 모여 나름대로의 캠페인에 나섰으면 한다. 이 모임을 ‘300억 클럽’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공교롭게 300억원대의 기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분들의 인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분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어린 시절 가난으로 고생을 했다는 점이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분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사회 환원을 실천하게 만들었을까. 그 ‘무엇’을 찾아낼 수 있다면 후진 교육에도 대단히 유익한 참고가 될 것이다. 대학이 귀중한 돈을 기부한 분의 뜻을 100% 살려 기부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류근철 박사의 말이다. “어젯밤에 정주영 회장님과 이병철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거기 가보니 아무것도 필요없대요. 모두 다 버리고 오라고 합니다.” ‘300억 클럽’에서 나올 만한 조크가 아니겠는가. 고 송하원 교수의 하늘나라 기부가 우리 기부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새로운 디딤돌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