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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김미루 누드와 ‘예상했던’ 댓글 소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미루(28)씨의 사진 작품에 대해 미국 미술평론가 리처드 바인이 쓴 글은 ‘예언’에 가까웠다. “(김미루가 자신의 나체를 찍은 것을 두고)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거나, ‘한국의 청년들은 유학 보내면 안 좋은 것만 배워온다’는 식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수집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전시 서문 중에서)

김씨가 한국에서 여는 첫 전시,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 기사(본지 8월 24일자 34면)에 대한 네티즌의 댓글이 그의 우려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기자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 35개 중 작품의 의미,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려 애쓴 내용은 단 두 개. “차라리 TV에 나와 스트립쇼를 하라”는 정도는 예의 바른 축에 속한다. 작품과 상관 없는 인신 공격이 수두룩하다.

김씨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시작해 유럽의 유서깊은 도시 파리·런던·베를린의 버려진 곳을 보듬으며 사진을 찍었다. 늘 공사 중이며, 새로운 건물이 신속하게 들어서는 이들 대도시에서 쓰레기 버리듯 폐허가 된 공간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새 건물, 새 길만 가득한 도시가 안타까웠다”는 김씨는 이렇게 도시의 이면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옷을 입었다면,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한 꺼풀 날아갔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몸은 황폐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현대 강남’의 우려도 얼추 맞아 떨어졌다. “김미루씨가 도올 김용옥(61) 선생의 막내 딸이라는 점에서 편견이 생길까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부친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작가의 마음이다.

네티즌의 댓글은 ‘작가 아버지’에 대한 평가와 ‘누드’에 대한 비판이라는 두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이 문자 그대로 ‘누드 사진’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생각’ 때문이다. 그는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숙지하고, 긴 시간 촬영 장소를 탐험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김씨의 작품을 다루면서 “이 작품이 강렬한 것은 에로티시즘 때문이 아니라 인체의 나약함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외설과 예술의 구분에 대해 “보면 안다”고 했던 미국 연방대법원의 1964년 판례 또한 유명하다. 벗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무엇을 위해 벗느냐가 핵심이다. 네티즌은 김씨의 작품을 보고도 모르는 것인지, 혹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인지….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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