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재경부의 거래소 '규제改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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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법률 중 정부의 규제개혁 취지를 벗어난 것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라 한다.

규제개혁위에 따르면 2백71개 법안 중 48개에 86건의 규제가 남아 있는데 이중 20건이 재정경제부 소관 사항이다.

한 예만 들어보자. 증권거래소 이사장에 대한 재경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한 조항이 삭제됐다가 국회 통과 과정에서 부활됐다.

거래소 이사장을 '유가증권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자' 라야 한다고 증권거래법에 정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회원사들의 1백% 출자로 설립된 거래소 이사장을 재경부가 무슨 근거로 승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시장' 을 손에 쥐겠다는 낡은 생각이 아니라면 재경부 관리의 '퇴임후 자리보장용' 이라는 수군거림도 일리 있다 싶다.

거래소의 공공적 기능 때문이라는 주장은 있을 법도 하다.

아직 시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면 철저한 감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공공적 기능을 강조했기에 거래소를 함부로 만들 수 없게 해놓았고, 임원의 자격요건을 법에 명시했으며, 업무에 대한 검사권을 금융감독위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규제나 감독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거래행위는 일차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규제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이다.

제재를 남발해도 시장 참여자들이 거듭나지 않으면 효율적인 감독은 공염불이다.

증권.선물거래소는 물론 증권업협회나 투자신탁협회 등 법에 정한 기관들에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에 맞다.

참고로 뉴욕증권거래소 (NYSE) 의 리처드 그라소 이사장은 30년간 NYSE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고 95년 그에게 바통을 넘겨준 윌리엄 도널드슨 이사장은 미국 최초의 상장 증권사인 도널드슨 룹킨 젠렛을 창업한 사람이었다.

관련 법안의 재검토가 있기를 바란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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