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보즈워스 전격 초청 … 북핵 협상 새 출발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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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左)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2일 저녁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은 북핵 협상의 새 출발을 의미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미국의 강력한 금융제재 조치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던 북핵 문제가 협상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의 방북은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 현안 지역의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대표를 임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2월 말 대북 특별대표로 북한 문제에 밝은 주한 미국대사 출신의 스티븐 보즈워스를 지명했다. 이미 2월 초 민간인 신분으로 북한을 둘러본 보즈워스는 방북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절하며 장거리 미사일 발사(4월), 핵실험(5월) 등 도발적 행동으로 일관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 부시 전 행정부 때보다 훨씬 강력한 유엔 제재 조치로 맞섰다.

부시 행정부 때와 달리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으로 대북 압박과 협상을 분리해 대응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의 지휘 아래 제재 국면에선 필립 골드버그 대북제재 조정관과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 및 금융정보담당 차관이 전면에 나섰다. 그러다 북한이 입장을 바꿔 대화와 협상을 이야기하자 협상 국면의 대표격인 보즈워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북·미 양측 모두에게 국면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 의지를 밝혔다. 클린턴은 미국으로 돌아가 정부 인사들에게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예상보다 양호하고, 북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 속에 북한은 공식 대화 채널을 찾았고, 미국은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미국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보즈워스 대표는 방북 시점 등을 놓고 하와이(이달 초)와 서울(22일·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사절단 일원으로 방한)에서 위성락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와 만나 이 문제를 깊이 논의했다. 그는 다음 달 한국과 일본·중국을 차례로 방문해 사전 협의한 후 곧바로 방북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방북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미국은 “비핵화만 이뤄지면 획기적인 관계 개선과 지원책이 이뤄질 것”이라고 재차 강조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시각도 아직 부정적이다. 부시 정부에서 대북 협상을 총괄했던 고위 인사도 최근 측근들에게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보즈워스의 방북은 북·미 대화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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