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폭주 본능’ 다듬어 레이서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폭주족 청소년을 모아 ‘모터 스포츠(레이싱)’ 교육을 시킨 뒤 재능 있는 이들을 뽑아 정식 대회에 참가시킨다.”

지난 18일 오토바이 폭주족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이런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를 올린 이는 서울경찰청 장흥식 폭주족 수사팀장이었다. 폭주족 사이에서는 ‘장 반장’으로 통한다. 올해에만 500여 명의 폭주족을 검거했다. 공지가 나가자 순식간에 신청 제한인원 30명이 채워졌다. 회원들의 성화로 10명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여고 2년생 이지혜(17·가명)양도 신청했다. 왼쪽 팔에는 자신의 이름, 목의 왼쪽 부분에는 ‘魔(마귀 마)’자 문신을 새겨 넣고 다닌다. 2년째 폭주를 즐기고 있다. 두 차례 경찰에 단속됐다. 15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기도 했다. 학교는 출석하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많다. 피자 배달을 한다. 공부엔 취미가 없다. “미래는 없고 오늘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 지혜가 교육 참가를 앞두고 처음으로 ‘미래와 꿈’을 이야기했다.

“룰(rule·규칙)이 있는 곳에서 처음 달리게 됐어요. 누가 알아요. 나도 훌륭한 선수가 될지. 대회에 나가면 나도 미래를 위해 달리게 될지도 모르죠. 우선은 그냥 재미 있을 거 같아 좋아요.”

장 반장은 “모터 스포츠 교육에 참가하는 청소년 모두가 지혜와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과 대림자동차가 26, 27일 이틀간 잠실트랙에서 폭주 전력자를 위한 레이싱 스쿨을 연다. 40명을 교육시켜 재능 있는 6명(여자 2명 포함)을 뽑아 다음 달 13일 정식 스쿠터 레이싱 KSCR(Korea Scooter Race Championship)에 참가시킨다. ‘폭주족을 잡는 경찰’과 ‘10대들이 애용하는 스쿠터를 만드는 오토바이 업체’가 손을 잡은 것이다.

서울경찰청과 대림은 올 상반기부터 ‘폭주족 교육’에 대해 논의해 왔다. 장 반장은 “단속이 대수는 아니다. 우리 애들에게 ‘재미를 풀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대림자동차 김계수 대표는 “오토바이라고 하면 폭주족을 연상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사회적 책임을 지고 싶다”고 했다.

경찰은 “교육 후 받은 수료증을 수사기록에 첨부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폭주족에게 알렸다. 교육에 참가하는 것을 ‘더 이상 폭주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번 교육에는 안전 주행이 무엇보다 강조된다. 폭주가 절도·성폭행·보험사기를 유발하는 범죄 행위라는 것도 부각시킨다.

지혜는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을 보면 ‘쟤들은 커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화가 난다”고 했다. 장 반장은 “막 사는 것 같은 아이들 마음속에도 바르게 살고 싶은 욕망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