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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에 묻는다]갈림길에 선 우리 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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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리를 가다보면 "선이나 도에 관심있느냐" 며 말을 걸어오는 젊은이들과 부닥친다.

지하철이나 휴일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선 으레 선교활동이 벌어진다.

이는 물론 최근에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1999년이라는 연도의 의미 때문인지 이런 일상의 일이 좀 각별하게 다가선다.

우선은 말세담론이 얼마나 강하게 번질지가 관심거리다.

하버드대 인문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런 세기말적인 단골메뉴를 두고서 '근본적으로 저질' 이라고 단정하지만 실제 나타나는 현상을 억누를 순 없는 입장이다.

말세담론은 당연히 종교적 열망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아무리 세기말과 새 천년을 말하더라도 도도한 컴퓨터 문명의 시대에 과연 종교가 제대로 먹히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서구의 교회가 비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밀레니엄 버그에서 드러나듯 과학은 항상 예기치 못한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그 돌파구를 종교적인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의 경우 사정은 더하다.

사이비 종교와 전쟁을 치르다가 94년초 테러로 생을 마감한 탁명환씨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의 신흥종교 수는 3백50여개, 신도수는 2백만명에 달하는데 이중 20%는 사이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흥종교 자체를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긴 곤란하다.

다만 개인과 사회적 질서를 부정.파괴하는 종교적 이단성이 문제" 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국종교협의회 주최의 한 세미나에서 정진홍 (서울대.종교학) 교수가 제기한 발언도 되새길 가치가 있어 보인다.

"당신들 정체는 무엇인가. 당신들은 과연 정직한가. " 정 교수에 의하면 "종교는 삶이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는 상징체계" 인데도 한국에서의 그 상징은 '자폐 공간' 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종교가 과연 아편인가 누룩인가' 의 해묵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당연히 누룩의 종교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편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종교의 시대가 오는가 마는가의 의문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대신 누룩의 종교시대를 여는가 마는가를 되물어야 할 것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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