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신춘중앙문예 시조 당선작]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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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마지막 각축을 벌인 작품은 김상기씨의 '우일 (雨日) , 비탈에 서서' 와 김순연씨의 '주전동 이야기1' , 송광룡씨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이다.

이 세 편은 언어를 다루는 용병술 (用兵術) 이 뛰어났다.

'주전동 이야기' 시리즈는 '바다를 떼어 팔며 살아가는 사람들' 의 그 삶의 궤적을 구어체로 그리고 있다.

연륜이 짧은 신인의 경우 주제의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거기에 압도당한 나머지 중도에서 서사구조를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인데 이 작품은 그 함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끈기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종장 처리의 미숙함이 드러나 먼저 탈락했다.

감각에 의탁하여 시문학을 경영하는 시대라면 아마 김상기씨의 '우일, 비탈에 서서' 나 그의 다른 작품 '섬' 이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머리채를 풀어헤친 전라 (全裸) 의 파도' 같은 대목은 이미지를 전개해나가는 기량은 탁월했으나 시적 상상력의 공간이 좁아 보였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아우르는 미학적 균형미를 살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당선작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은 현실을 끌어 안되 그 현실을 날 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끈끈하게 발효시켜 새로운 힘으로 환치한다.

'날 것' 을 날 것으로 드러내지 않은 그 절제의 미학이 작품 전체의 탄력을 유지하는 핵산 (核酸) 역할을 한다.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돌곶이…' 은 비극적 세계 인식이 아닌, 척박한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심사위원 김제현.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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