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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행 옴부즈맨 칼럼]흥미위주의 새해특집 '예언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해 새아침은 소망과 기도, 예측과 예언의 합주 (合奏) 속에 열렸다는 느낌이다.

올해엔 두드러지게도 거의 모든 신문이 16세기 프랑스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1999년 7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의 대왕의 생명은 부활하고. 그 전후에 마르스가 행복의 이름 아래 지배할 것이다' 는 4행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제세기 (諸世紀)' 속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대목이다.

특히 '1999년 7번째 달' 이라고 햇수와 달까지 명시한 것은 그의 예언시 가운데서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도 그 해석을 에워싼 논의가 분분했다.

지금까지 해석상의 주류 (主流) 는 이른바 '종말론' 이 차지했었다.

성서적 해석 또는 요한계시록과 연관된 이같은 해석에 대해선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2세도 부인성명을 낸 바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종말론' 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다.

'1999년의 7번째 달' 만 하더라도 표현 그대로 '1999년 7월' 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1999년과 7번째 달' 즉 '2000년 7월' 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가 점성술 (占星術)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프랑스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1999년 8월 11일이라는 풀이도 있다.

심지어 태양계의 행성들이 그랜드 크로스, 즉 거대한 십자형 배열을 이루는 때라는 풀이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노스트라다무스는 그의 저서 '제세기' 의 머릿글에서 "3797년까지의 예언을 쓴다" 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결국 1999년의 종말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노스트라다무스의 특집을 꾸민 신문들은 한결같이 흥미 위주의 일반적인 이야깃거리만 제공했을 뿐 머릿글조차 인용한 곳이 없었고, 다양한 해석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한 곳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예언이란 흥미위주로 다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다루려면 노스트라다무스의 한반도에 대한 예언도 소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비록 일부 전문가의 해석이기는 하지만 '제세기' 속의 여러 대목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운명과 한반도의 통일을 예언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노스트라다무스와 대비되는 우리나라의 예언가론 남사고 (南師古)가 손꼽힌다.

16세기의 동시대인 (同時代人) 이기도 한 두사람을 대비시키는 것은 어쩌면 '우리적' 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해특집에 곁들인 남사고의 '격암유록 (格菴遺錄)' 이야기는 너무나 허술하고 빈약했다는 느낌이다.

남사고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심지어 조선조의 멸망을 예언했다는 따위의 소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격암유록' 의 실체와 한반도통일의 예언까지도 다루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사고는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해는 닭이 세번 우는 청계지년 (靑鷄之年) , 즉 을유년 (乙酉年) 이고 통합되는 해는 '용사적구희월야 (龍蛇赤狗喜月也)' 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풀이로는 그 해가 용의 해 또는 뱀의 해인 2000년이나 2001년의 9월이라는 설 등 여러가지가 있다고 들린다.

욕심일는지 모르지만 비단 노스트라다무스나 남사고의 한반도통일 예언뿐만 아니라 홍암 나철 (弘嚴 羅喆) 과 화엄학회 (華嚴學會) 의 각성 (覺性) 의 예언풀이도 한번쯤은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제치하에서 행한 나철의 예언은 '조계칠칠, 일락동천 (鳥鷄七七 日落東天)' , 즉 을유년 음력 7월 7일 (양력 8월 15일) 해가 동쪽하늘로 떨어지니 일본은 망한다는 구절부터 시작해서 '적청양양 분탕세계 (赤靑兩陽 焚蕩世界)' , 즉 공산 (赤) 자본 (靑) 두 이념 (兩陽) 이 세계를 분탕질하고 '천산백양 식음적청 (天山白陽 食飮赤靑)' , 즉 백두산 (天山) 과 이념 (白陽) 이 공산자본이념을 먹어 버린다는 것으로 돼 있다고 한다.

새해특집에서 기왕 예언을 크게 다룰 바엔 종래의 예언풀이 차원을 벗어나는 변화가 모색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규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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