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미 “우승 상금 모아 부모님께 집 사드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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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고 있다. 이보미는 연장에서 US여자오픈 우승자이자 1988년생 동갑내기인 박인비를 꺾고 KLPGA 첫 우승컵을 들었다. [KLPGA 제공]

이보미(21·하이마트)는 연장 두 번째 홀 경기가 열린 18번 홀(파4·365야드) 그린 옆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속으로 기도를 했다. ‘이번엔 우승하고 싶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동갑내기 박인비(SK텔레콤)가 2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는 것을 확인한 이보미는 천천히 공에 다가섰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30㎝ 거리의 챔피언 퍼트를 마무리한 뒤 두 손을 치켜들었다. 그린 주변에선 10년 동안 딸을 뒷바라지했던 어머니 이화자(48)씨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보미가 23일 제주 더 클래식 골프장(파72·6479야드)에서 끝난 KLPGA투어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합계 12언더파로 박인비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두 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 이날 우승상금 1억원을 받은 이보미는 상금랭킹 3위(1억6950만원)로 올라섰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챔피언 박인비와 함께 공동선두로 최종 3라운드를 시작한 이보미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아냈다. 버디 1, 보기 1개로 제자리걸음을 하던 박인비 역시 16, 17, 18번 홀에서 3연속 버디로 동타를 이루면서 극적으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넘겼다.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홀 경기. 이보미는 3라운드 18번 홀에 이어 연장 첫 번째 홀에서도 티샷한 공을 페어웨이 왼쪽 벙커에 빠뜨렸다. 그러나 두 번째 샷을 홀 1.5m 거리에 붙인 뒤 힘겹게 파세이브에 성공하며 승부를 연장 두 번째 홀로 몰고 갔다.

같은 홀에서 다시 열린 연장 두 번째 홀 경기. 절정의 샷 감각을 자랑하던 박인비는 세컨드 샷한 공을 홀 12m 거리에 떨어뜨렸고, 여기에서 3퍼트를 하면서 국내 무대 첫 우승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보미는 2008년 KLPGA 2부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뒤 지난해 말 KLPGA투어에 데뷔한 프로 2년차의 기대주. 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보고 이듬해 골프에 입문한 또 한 명의 1988년생 ‘박세리 키즈’다.

지난 5월 한국여자오픈과 6월 우리투자증권 챔피언십에 이어 지난주 하이원컵 여자오픈에서도 각각 1라운드 선두에 나섰던 그는 대회 때마다 막판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우승 목전에서 물러났던 아픔을 이날 우승으로 깨끗이 씻어냈다.

“하이원컵 대회 때는 너무나 약이 올라 밤새 울었다. 나는 ‘우승과는 거리가 먼가 보다’하고 자책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니 이화자씨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보미 친구가 태권도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골프를 시켰다. 우리 집안에 골프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박세리 프로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유망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골프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이보미는 “우승상금을 모아서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다”며 “올해 목표는 시즌 3승이다. 한·일 여자골프대항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꼭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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