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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본 우리경제]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硏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예견.진단.처방.주장은 일관성이 있다.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미 97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세계경제에 대한 잠재적 충격' 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태국과 한국의 경제문제를 지적했었다.

그의 처방은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다함께 통화.재정팽창을 통한 국내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미국.유럽의 대폭 금리인하와 달러약세 (엔강세) 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각국의 금융개혁이 이뤄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동안 선진국들은 국제통화기금 (IMF) 을 통한 지원을 참을성 있게 계속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태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벌써 햇수로 3년째 들어서고 있다. 먼저 현 상태에서의 세계.아시아의 전체 그림을 그려보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직도 모두들 '위기의 한가운데' 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회복궤도에 들어섰다고 말하기도 아직 이르고 오히려 또 다른 시장혼란이 닥칠 가능성이 여전하다. 일본.브라질은 물론 아직까지 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던 아시아의 다른 국가가 새로운 혼란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모든 위기 당사국들의 경제는 지금도 가라앉고 있다. 또 이번 위기는 멕시코.중남미 위기와 달리 구조적 결함에서 시작됐다. 통화팽창.재정적자 등에서 비롯된 중남미 위기는 비교적 이른 시일안에 바로잡힐 수 있었으나 아시아 위기의 구조조정은 그보다 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 한국 상황은 어떻게 보는가.

"한국은 옳은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위기가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됐으므로 이를 치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을 오랜 기간 꾸준히 시행해 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 구조조정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경기회복세는 그전에 시작될 수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이미 경기가 바닥을 치지 않았는가 하는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경기가 이미 최저점을 지났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조조정에 걸릴 시간을 생각하면 앞으로 본격 회복까지는 적어도 2~3년은 지나야 하리라고 본다. 그 동안 회복세는 미미할 것이다. "

- 인플레적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인플레적이라고 하기보다는 리플레적 (reflationary) 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모든 국가가 같은 정책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 다행히 아시아 각국은 비교적 재정이 건전한 상태에서 위기를 맞았으므로 부양책을 펼 여지가 충분하다. 이를 위해 일본이 대규모 자금제공에 나서는 것 외에 필요하다면 선진국들이 약속한 이른바 '제2선 방어자금' 도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시장경제로 가기 위해 정부가 더 깊이 개입하고 있는 모순을 어떻게 보는가.

"시장이 크게 뒤틀린 상황에서의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 차선책이라도 그것밖에 시장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면 써야 한다. 정부 스스로 크게 왜곡된 것도 정부 개입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당장의 정부 개입이 금융.기업 등의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정해놓고 이에 충실해야만 정당화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빅딜' 을 보자. 사업교환은 좋은 첫걸음일 수 있으나 과잉시설.인원에 대한 다운사이징이 뒤따라야만 본래 목적이 달성된다. 시장 논리가 관철돼야 '빅딜' 이 효과를 보고 또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

- 여기 지난해말 미 재무부가 의회 앞으로 발행한 '한국 경제 확인서' 사본이 있다. 한국 정부가 IMF와의 약속대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것 때문에 미국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다그치고 있다는 '음모설' 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연구소의 동료 한 사람도 지난해말 서울을 방문했다가 정치인은 물론 심지어 지식인들 중에서도 미국이 IMF에 압력을 넣어 미국 이익을 챙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일본에는 이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한마디로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 경제가 깊은 곤경에 빠지면 한국과의 무역 규모가 큰 미국 경제에도, 북.미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미국 안보에도 좋지 않다. 기업들의 로비는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한국 경제가 이른 시일 안에 회복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맞으니 IMF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것이다. 의회가 IMF의 한국 프로그램을 관리하겠다며 불필요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다. 이런 확인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

- 미 행정부.의회간 갈등, 빌 클린턴 대통령의 리더십 등이 한.미 경제관계에 아무래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는데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노동계의 지지를 받은 클린턴 행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여기다 탄핵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한국의 대미 흑자는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계속 한국의 개혁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올해 무역마찰은 커질 수 있다. "

- 한.미 투자협정 협상에서 논란거리 중 하나는 자본이동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이른바 '세이프 가드' 를 두느냐 안두느냐다. 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금융질서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은 세이프 가드를 두어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단기자본의 급격한 이동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 가드가 필요하다. 말레이시아 식의 자본규제가 아니라 칠레와 같은 단기자본 규제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로운 세계금융질서 구축과 관련해 범 국제기준에 따른 자본이동 규제나 토빈세 (稅) 같은 것은 실현성이 없다. 그보다 각국 나름대로 건전한 금융체제를 갖추고 변동환율에 더 충실하려 노력하며 특히 단기자본의 유입을 감시.규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

- 올해 유로화가 출범했다. 또 세계경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올해 세계 각 지역의 경제가 어떤 모습이리라고 보는가.

"세계경제 성장률은 2% 정도, 세계교역 증가율은 4~5%가 되리라고 본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위기상황에서 그리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다. 이는 미국.유럽도 올해 경기가 후퇴하겠지만 그래도 세계경제를 받칠 만한 수준의 성장은 계속하리라는 판단에서다. 올해 2~2.5% 정도의 성장이 예상되는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질 염려는 없다.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충분하고 재정도 흑자여서 미국은 불황을 막을 정책수단이 많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약 80년만에 처음으로 출현한 '달러와 경쟁할 수 있는' 화폐다. 따라서 상당한 자금이 달러에서 유로로 이동할 것이고 여기다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크고 무역적자도 커지므로 달러화는 올해에 더 떨어지리라고 본다. 한국은 이미 옳은 궤도에 들어섰으므로 한국 경제 자체로 보나 주변국들과 비교해 보나 장래는 밝다. 2~3년 뒤에는 긍정적으로 돌아서리라고 본다. 그동안 구조조정의 시행과 함께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전환기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수길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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