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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새천년맞이]주요 국가들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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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력 (西曆) 세번째 천년. 미지의 시간이다.요즘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보라. 천년은커녕 다음 세기 중에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지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우주여행이 보편화되는 최첨단 문명과 세계평화의 유토피아 시대가 도래할지, 아니면 환경파괴로 인한 대재앙이 엄습해 디스토피아가 올지 알 수 없다.

모두들 무한한 가능성을 상정하면서 미래의 설계도를 그리기에 한창이다.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들은 더 큰 번영을 위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새 모습으로 거듭 나기 위해 모든 지혜를 동원한다.

'더 잘 살자' 는 20세기적 낡은 구호를 넘어 '질적 비약' 을 모색하며 새 천년 맞이 구상을 하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미국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세계' .미 정부가 규정한 새 천년의 그림은 '엄청난 변화' 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게 미국의 새 천년 준비의 핵심 주제다.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게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 토대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백악관 밀레니엄 위원회가 지난 7월초 확정지은 '밀레니엄 슬로건' 도 '과거를 존중하고, 미래를 그려보며 (Honor the Past - Imagine the Future)' 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20세기는 '미국의 세기' 였으며 미국인의 개척정신, 개혁정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이를 가능케 했다" 면서 "새 천년에도 미국이 지금의 자리를 지키려면 국민의 다양성과 동질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미국은 새 밀레니엄을 맞아 강조해야 할 과제로 ▶교육창달 ▶경제성장 ▶문화번성 ▶법질서 수호 ▶과학기술 발전 ▶환경보호 ▶시민정신 회복 등을 설정했다.

그리곤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키 위해 정보고속도로 (Information Superhighway) 라는 인프라 건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 사업은 클린턴 취임 직후부터 추진된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2000년 프로젝트도 이에 필적할 것이 없다.

새 천년의 특징이 될 고도 정보화사회에 효과적으로 선착 (先着) , 탈냉전 시대의 헤게모니를 계속 틀어쥐려는 원대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보화 프로젝트는 국가차원의 정보통신 기반을 조속히 구축하고, 이를 세계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공공.복지기관, 기업.대학, 그리고 가정을 정보 통신망을 통해 하나로 연결해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고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포부인 것이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중국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세계의 중심이란 뜻의 국호 '중국 (中國)' 에 걸맞게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을 부흥시키자는 게 중국의 각오다.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던 근대사 2백여년을 털어버리고 새 밀레니엄을 '중국의 천년' 으로 만들자는 야심이다.

그 출발점은 경제다.

중국은 늘 7%의 면적으로 세계인구 22%인 12억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인구의 무한증가는 파국이다.중국은 자체 감당할 수 있는 극한 (極限) 인구수를 17억명으로 꼽고 도달 시점은 21세기 중엽으로 예상한다.이에 대비해 땅덩이 불리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간척을 통해 최소 1백만㏊ 이상을 넓힌다는 것. 중국 대륙에 연한 1만8천㎞ 해안선을 따라 간척한다는 것이다. 기간은 짧으면 40년, 길면 50년 정도로 예상한다.간척이 끝나면 최소 2천만~3천만명의 인구를 더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독일

독일의 새 천년 계획에선 의미심장한 면이 엿보인다.

지난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사민당 (SPD) 정권은 전후 세대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54) 총리를 중심으로 '원죄의식' 보다 현재와 미래를 향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2000년까지 독일 수도를 지금의 본에서 베를린으로 완전히 옮겨 베를린을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도시로 만들고 독일을 유럽의 정치중심국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2000년 6월 1일부터 5개월동안 세계 1백53개국이 참가해 여는 하노버 세계무역박람회도 대표적인 밀레니엄 행사중 하나다.

프랑스가 1900년 파리 박람회를 통해 1890년대 드레퓌스 사건 등 세기말 불안의 그림자를 씻고 '진보의 20세기' 를 열었듯, 독일은 이 박람회를 통해 20세기 나치즘의 어두운 역사를 털고 미래지향의 21세기를 강조하겠다는 생각이다. 2~3년 후 수도 베를린의 중심부에 세워질 '대학살 박물관' 도 어두웠던 20세기의 독일을 마무리짓겠다는 2000년 구상중 하나다.

고대훈 기자

◇일본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고 장기불황에 발목이 잡혀있는 일본은 올 한해를 '우울함' 을 떨쳐내는 해로 상정한다.

새 천년은 산뜻한 기분으로 맞겠다는 의지다.

2001년, 일본에는 변혁이 예고돼 있다.

중앙부처 개편을 통해 '관료중심의 사회' 를 끝내고, 수도도 도쿄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낡은 일본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금융개혁.경제구조개혁도 2000년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단점은 고치되 장점은 최대한 살리는 게 일본이다.

그 점에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첨단기술' 은 일본이 양보할 수 없는 최후 방어선이다.

그중 하나가 초전도 자기 (磁氣) 부상 리니어 모터카다.

레일 위로 10㎝ 떠서 달리는 리니어 모터카는 고속 대량운송이 가능한 데다 에너지 효율도 높다.

같은 무게의 짐을 1㎞ 운반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일반 승용차의 40%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개발에 성공할 경우 단번에 세계 철도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시승식에서 가뿐하게 시속 4백50㎞를 넘어 도쿄 (東京)~오사카 (大阪) 를 1시간에 주파했다.

리니어 모터카는 헬륨을 이용, 극저온으로 자석을 냉각시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일본 첨단기술의 집대성이다.

일본은 독일의 '트랜스 래피드' 나 극저온 기술의 선두주자인 미국보다 한발 앞서 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지형이 가장 험한 야마나시 (山梨) 현에서 이미 실험에 성공, 내년말 평지에서 시속 1천㎞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프랑스

독창성.독자노선을 좋아하는 게 프랑스다. 그래선지 새 천년을 맞는 각오에도 남다른 데가 있다. '나를 바탕으로 남까지 생각한다' 는 것이다.

지난 96년 12월 총리실 직속기구로 발족한 '2000년 기념사업단' (단장 장 자크 에야공) 이 캐치프레이즈로 '프랑스.유럽.세계' 를 택한 것도 이런 각오에서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단이 각종 기념행사와 프로젝트의 입안.기획.진행을 주관하고 있다.

에야공 단장은 '축제.성찰.창조' 를 프랑스의 새 천년 맞이 사업의 세 축으로 정했다.

오는 2001년말까지 계속될 갖가지 행사와 사업은 모두 이 세 축에 연결돼 있다.그중에서도 프랑스 정부가 역점을 두는 것은 '성찰' 이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도구는 지식이다. 현존하는 모든 지식을 집대성함으로써 '공존하는 새 천년' 의 초석 역할을 프랑스가 맡겠다는 것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영국

영국은 새 천년 목표를 'Cool Britannia (멋진 영국) 건설' 로 잡고 있다.

젊어진 영국, 현대적이고 박력있는 문화의 영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이다.

이같은 의지는 새 밀레니엄에 맞춰 건설될 대형 조형물로 집약된다.

영국의 밀레니엄 위원회는 2000년까지 2조2천4백억원을 조성, 영국 문화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념관과 전시관.박물관 등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71건의 밀레니엄 기념물들이 탄생한다.

새 밀레니엄 축제행사장이 될 '밀레니엄 돔' 을 비롯, 1백년만에 건설되는 템스강의 새 다리, 세계 최대의 식물원이 될 '에덴 프로젝트' , 최신 정보기술의 메카가 될 뉴 테크노폴리스 등이 그것이다. 밀레니엄위원회는 "이 건축물들은 20세기말의 성취의 이정표인 동시에 다음 1천년을 향한 포부의 상징" 이라고 역설한다.

영국은 이들 역사적 대형 건축물들을 통해 문화국가로 다시 도약하는 동시에 부수적으로 고용창출 효과를 얻고, 새천년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다지겠다는 포석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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