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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 매각 의미]外風가세로 금융개편 가속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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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일은행의 해외매각이 지난해 내내 계속돼온 금융구조조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동안 매각시한을 연장해 가며 골치를 썩여온 만큼 연말을 넘기지 않고 팔렸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매각조건이나 앞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장래를 보면 매각 자체만 가지고 좋아할 일은 아닌 듯 싶다.

우선 이번에 제일은행을 인수하기로 한 뉴브리지 금융컨소시엄이 정통 상업은행이 아니라 주로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한 투자기관이라는 점이 걸린다. 아직 뉴브리지측의 구체적인 경영방침을 알 수는 없으나 선진금융기법 도입이라는 파급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이번 제일은행의 매각과 올해초로 예상되는 서울은행의 매각을 계기로 국내 금융산업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도 구조조정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은행들은 이제 수익성을 철칙으로 삼는 외국은행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결국 국내은행들은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은 가혹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또 대우.SK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외국계은행이 된 후에도 정부의 '금융기관을 통한 재벌개혁' 구도가 먹혀들지 의문이다.

◇ 국민부담 10조원 = 정부가 제일은행에 추가로 집어넣어야 할 돈은 약 4조~5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지난해 1월 정부는 제일은행에 1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3조5천6백92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사줬다. 모두 5조원의 재정이 투입된 것이다.

여기에 다시 5조원가량을 지원하면 제일은행 하나 파는데 약 10조원의 국민세금을 쏟아붓는 셈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93.75%의 제일은행 정부지분을 51%만 넘기되 나머지 지분은 주가가 오른 뒤 비싼 값에 되팔면 투입자금중 5조원 가량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은행 판도변화 = 제일은행이 외국은행으로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면 국내 은행들로서는 이에 대응하는 체질개선이 요구된다. 경영 투명화.고도의 전문금융기법 도입.차별화 등 체질개혁을 통해 시장경쟁에서 이긴 은행은 성장하고 변화에 뒤처지는 은행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난해 합병을 선언한 대형은행과 특화된 영업전략을 가진 몇개 은행으로 은행권 개편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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