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혁과 갈등속에 보낸 9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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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해였다.

전례없는 경제난 속에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맨 채 숨죽이고 지낸 98년이었다.

가정도 기업도 예외없이 위기를 맞았고 일터를 잃은 근로자들이 거리를 방황하는가 하면 노숙자가 크게 늘어나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한해였다.

새 정권이 출범했고 모든 분야가 1년 내내 개혁과 이에 따르는 갈등으로 몸부림쳤던 한해이기도 했다.

나라 전체가 이토록 어려웠지만 정치권의 대립과 반목은 그칠 줄 몰라 국민들을 한층 실망시켰다.

특히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한 뜻깊은 해였으나 정치권은 개혁은커녕 더욱 퇴보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국민들이 국제통화기금 (IMF) 고통 극복에 몸부림치고 있어도 정치인들은 당쟁만 일삼아 비난과 분노가 쏟아지기도 했다.

1년 내내 여야간 반목과 불신이 심화되면서 영수회담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정치력과 리더십의 부재를 절감해야 했다.

연초부터 부도업체가 속출하면서 많은 기업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하는 절박함을 맛봐야 했고 금융권 개혁과 대기업 빅딜 등 유례없는 회오리가 몰아치기도 했다.

불경기가 장기화하면서 불가피하게 내수 위축.수출 둔화가 고착됐고 생산기반이 허물어졌으며 수많은 근로자들이 해고당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외환위기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경기가 다소나마 회복되는 조짐을 보여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불행 중 더없는 다행이었다. 전례없는 실업률로 2백만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고통을 겪은 해였다.

정부는 실업대책 마련과 함께 경기부양에 안간힘을 썼지만 터진 봇물을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멀쩡하던 가장이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됐고 생계형 범죄가 극성을 부리게 됐다.보험금을 노린 끔찍한 신종 범죄가 생겨나기도 했다.

1년 내내 계속된 북풍 (北風) 과 세풍 (稅風).총풍 (銃風) 은 해를 넘기며 마침내 법정다툼으로 번졌고 사정 (司正) 의 칼자루를 쥔 검찰권이 오히려 도마 위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한편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새 정부의 외교정책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됐다.

또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였고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분단후 처음 실시된 금강산 관광이 그 첫 결실이었다.다만 이같은 갑작스런 대북정책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념.사상의 혼란과 갈등도 불러일으켰다.

특히 북한이 수시로 잠수정이나 간첩선을 남파한 것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나라 전체가 이처럼 개혁의 몸부림 속에서 바쁘게 움직였지만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정치권.교육계.법조계 등 개혁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에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해였지만 더 나은 앞날을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면 결코 98년이 헛된 한해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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