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 아홉, 꿈마저 잊을 수는 없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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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05면

서른 아홉 여자들 이야기다. 꿈을 잃었지만 꿈을 잊을 수 없는 나이, 아직도 첫사랑 생각에 흥분하곤 하지만 등 돌리며 자는 남편이 밉지 않고 불쌍한 나이다. 연극 ‘울다가 웃으면’은 서른 아홉 여자들의 그 속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 바람을 쏘여준다. 관객의 반응은 하나다. 공감과 카타르시스. 너무 뻔해 거부하고 싶지만 감정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신파네 뭐네 하면서도 몰입하게 된다.

극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결혼과 죽음ㆍ진실에 대한 단상을 각 장에 나눠 담았다.1장은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재연ㆍ소영ㆍ현수의 수다로 이어진다. 결혼과 꿈이 자신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를 솔직한 일상언어로 풀어냈다. 딸만 셋을 둔 재연은 시집살이에 지쳐 존재감이 흐릿해진 자신의 삶이 싫다.

유명 영화감독의 아내인 소영은 남편의 바람이 겁난다. 아이 갖기에 매달려 인공수정을 7차례나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유학파 연극영화과 교수인 현수도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공부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못해 이혼을 당했다. “서울대에 연극영화과 없어 어떡하니”라며 비아냥거렸던 전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1장이 이렇게 초라하고 치열한 서른 아홉 여자들의 삶을 그렸다면, 2장은 죽음을 그린다. 종합병원의 암병동에서 세 명의 말기 암환자가 풀어내는 수다다. “집에 가고 싶다. 예전에 엄마 아빠와 살던 집. 거기서 맛있는 것도 먹다가 피아노도 치다가 그러다 가고 싶다.” 겉은 젊음을 잃어 가는데, 속은 아직 아이다. 그 실체를 제대로 짚었다.

연극을 끌고 가는 주요 장치는 수다다. 수다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보듬어 준다. 소통 불능의 시대, 점점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수다의 힘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음악과 영상을 적절히 배치한 것도 연극 ‘울다가 웃으면’의 매력이다. 극 첫 장면도 인상적이다. 무기력하게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재연의 뒷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TV 속 통속 드라마의 유치한 대사들이 재연의 고독을 더욱 짙게 형상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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