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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이삭’ 주워놓으면 내년엔 풍성할 것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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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24면

‘신흥시장 전문가’ 마크 모비우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 회장은 “이머징마켓 주가가 올해 말까지 30%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은 2007년 10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모습.

“이머징 마켓 주가가 20~30% 뚝 떨어질 것이다.”
미국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 마크 모비우스(72) 회장의 예측이다. 이른바 ‘닥터 둠(비관론자)’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마크파버투자자문 대표)나 노리엘 루비니(뉴욕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 한 말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만하다. 하지만 그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낙관론자에 가깝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후 줄곧 주가 상승을 부르짖어온 사람이다. 이런 그가 돌연 주가 급락을 입에 올렸다. 최근 가파른 오름세인 이머징 마켓의 하락을 예상했다. 심상치 않게 들렸다. 서둘러 그에게 e-메일로 질문을 띄웠다.

신흥시장 증시 30% 급락 경고한 마크 모비우스 회장 

-시장 전망이 바뀌었는데….
“주가가 눈에 띄는 하락 없이 계속 올랐다면 조만간 출렁거릴 게 분명하다. 그것이 시장의 이치다.”

-비관론자가 된 것인가.
“장기적으로 나는 늘 낙관적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변동성을 간파하고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자가 장기적인 관점을 고집하거나 단기적인 흐름만을 살피면 고집스러워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말한 모비우스는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주가 흐름을 되짚었다. 그는 “미국 등 주요 나라들이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2조 달러 이상 투입했다. 그 덕분에 세계 증시 흐름을 보여주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지수가 올 3월 9일 이후 54%나 올랐다. 대표적인 이머징 마켓인 중국 상하이종합주가지수와 러시아 주가지수(MICEX)는 올 들어 70~80%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정도면 한 번쯤 조정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상승세가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주가 하락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 또 있다. 요즘 일반기업과 금융회사의 재무 책임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자금 유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증시 자금이 분산될 수 있다.”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올 상반기에 발행한 채권은 8500억 달러에 이른다. 6개월 발행 규모로는 블룸버그가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많다. 올해 안에 기업공개(IPO)를 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300여 곳에 이른다. 호황기인 2005년이나 2006년보다는 못하지만 지난해보다는 30% 이상 늘었다.

-20~30% 하락은 어떻게 산출한 것인가.
“특별한 방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인 경험에 비춰 6개월 정도 사이에 50% 이상 상승했으면 20~30% 정도 하락이 이어졌다. 나는 이머징 마켓 주가가 지금 수준에서 그 정도 조정 받을 것으로 본다. 주가 하락은 올 연말까지 이어질 듯하다. 실제 하락 폭은 ‘일반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얼마나 채권과 주식을 발행하는가’에 달렸다.”

-일시적 하락이라고 했는데 언제 다시 오를까.
“내년 시장 상황이 올해보다 더 좋을 것으로 본다.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계속하고, 기업 실적이 더 좋아질 듯하다. 이머징 마켓 주가는 올해 일시적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오르기 시작해 내년 말에는 2008년 최고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좋으면 2008년 최고치보다 30% 정도 더 오를 수도 있다.”

MSCI이머징마켓 지수는 현재 830선이다. 지난해 최고치는 1240선이었다. 모비우스 예측대로라면 이머징 마켓은 지금부터 내년 말 사이에 ‘적어도’ 50%는 오른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머징 마켓의 호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뒤인 1월에는 “이머징 마켓 비중(투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가 이런 말을 하던 순간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은 불안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올 3월에 한 걸음 더 나가 “황소(Bull·강세)장이 이미 열렸다”며 “지금이 주식을 사들일 때”라고 말했다. 이후 결과를 놓고 보면 그의 말은 맞아떨어졌다. 이번 예측도 맞아떨어질까? 화제를 바꿔 실물 경제에 대해 물었다.

-많은 전문가가 이중침체(더블딥)를 경고하고 있다.
“분명히 최악의 순간은 지났다고 본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도 낮게 형성되고 있고 파생상품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미국·유럽 실물 경제가 꾸준히 회복할 듯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모비우스는 ‘이머징 마켓의 피리부는 사나이’로 통한다. 독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따온 말이다. 동화 주인공이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몰고 다닌 것처럼 그는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선진국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2007년 10월, 그런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싱긋 웃으면서 “그들을 이끈다기보다 그들의 생각을 잘 읽고 대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에 대한 그의 진단·평가는 외국인투자자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서둘러 자금을 푸는 등 한국 정부가 아주 신속하게 대응했다”며 “그 덕분에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5.1%(전분기 대비)에서 올 1분기 이후에는 플러스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 “외환보유액도 올 5월 2268억 달러로 늘어났다”며 “외환위기의 두려움이 한결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모비우스는 한국이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FTA) 협상을 마무리 짓고, 인도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은 것에 가점을 줬다. 또 정부의 부양 외에 민간 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등이 회복된 것도 국내 경제가 살아나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너무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과열이 아니다. 경제 회복 속도와 정도는 경기부양책에 비춰 합리적인 수준이다. 앞으로는 규제 완화 등 한국 정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 규제 완화 정도에 따라 당신네 경제의 성장 폭이 결정될 것 같다.”

-한국 증시의 앞날은.
“한국 증시는 바탕이 아주 탄탄하다. 선진국 증시보다 더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잠재력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순간에 좋은 종목을 싸게 사들이면 좋다.”

-어떤 종목을 사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우리(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는 올 1· 2분기에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건설, 반도체, 가전제품 종목 가운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종목을 골랐다. 앞으로도 이처럼 저평가된 종목을 집중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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