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적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30년 전 남해안 작은 마을,
팔월의 땡볕이 끓는 바닷가를
한 소년이 거닐고 있다.

늘 보던 쪽빛 바닷물 대신
선홍색으로 물든 파도가
발 밑에서 부서진다.

썩어들어가는 바닷물에
물고기는 이리저리 도망가고
바람에 실려오는 건 악취뿐.

황폐해진 어장, 양식장에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에선
한숨소리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적조는
수백억원씩 피해를 남겼고
30년이 지난 올해도
어김없이 고개를 든다.

바다 빛이 붉게 변하면
이제 40대 어부가 된 소년의
얼굴색도 어둡게 바뀐다.

양식장 물고기를 살리려고
적조보다 시뻘건 황토물을
배 위에서 이리저리 뿌려댄다.
바다 위의 전쟁이다.

양식장 사료 찌꺼기와
도시에서 내보낸 오폐수를
말 없이 받아 마셔야 하는 바다.
가끔은 사고 난 유조선의
시커먼 기름도 뒤집어쓰고.

여름 한철 해수욕장 모래밭에
양심과 함께 버려진 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떠도는 쓰레기를 파도에 실어
해변으로 밀어 보내봐도
건강을 되찾기엔 역부족.

오늘도 반복되는 바다의 외침,
어부는 30년째 듣고 있다.
찌꺼기를 건져주오,
오폐수를 걸러주오….

산소가 없어 숨이 막힌 바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오늘도 적조가 돼 피를 토한다.

*지난 5일 경남 거제해역에서 발생한 적조가 서남해안과 동해안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10일 적조가 10월 중순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찬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