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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놀이의 동물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열등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문어가 '놀이'를 할 줄 안다는 보고가 나와 관심을 끈다. 장난은 지능이 발달된 척추동물의 전유물이라는 게 그간의 견해.

문어의 장난을 발견한 사람은 미국 시애틀 수족관의 롤랜드 앤더슨과 캐나다 레스브릿지대의 제니퍼 매더박사. 이들이 8마리의 문어에게 진통제가 담긴 약병을 주자 처음에는 먹이로 여겨 먹으려 했으나 이내 먹을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깨닫고 밀쳐냈다는 것. 실험자들이 밀쳐낸 병을 또 쥐어줘도 8마리의 문어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으며 그 중 한 마리는 무려 30분 동안이나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앤더슨은 "문어는 적이라고 판단하면 진한 먹물을 강하게 뿜어대지만 타이레놀 병에는 약한 먹물만을 뿜어냈다"며 이런 사실이 장난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문어가 상당한 지능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실제 문어는 조개나 전복과 비슷한 동물이지만 단단한 방어용 껍질이 없는 대신 머리를 키워와 지능이 이들보다 높다는 것.

그런가 하면 쥐는 장난을 넘어서 웃기까지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주 볼링그린 주립대의 잭 팬크세프박사팀은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에 "어린 쥐에게 간지럼을 태울 때 이들이 격렬하게 찍찍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또 어린 쥐들의 늙은 쥐보다 잘 웃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쥐 역시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장난이나 놀이를 구별하는데 웃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강원대 생물학과 권오길(權伍吉) 교수는 "영장류에서 놀이는 사회성을 기르고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 역시 어린 시절 놀이는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 사람의 놀이는 머릿속으로 외부환경을 나름대로 규정해내는 고도의 상징능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교원대 생물교육학과 박시룡(朴是龍) 교수는 "동물들의 경우 장난을 제대로 못 배운 것들이 사회생활에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원숭이의 경우 형제간 서열, 배우자 선택 기술 등의 상당 부분이 장난을 통해 습득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긴꼬리원숭이는 스스로 걸을 만큼 성장하면 새끼 끼리 노는데 놀이가 난폭해지질 않을 정도면 어미는 장난을 말리지 않고 지켜만 본다는 것. 새끼의 교육을 위해 어미가 참고 견딘다는 말이다.

미국의 할로우교수는 놀 기회를 전혀 주지 않으면 커서 교미조차 못 하는 원숭이가 많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놀이 또한 동물과 같은 맥락일까. 과거 어린이들의 놀이를 관찰한 심리학자들은 대부분 놀이를 근육활동에 대한 욕구나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잉여에너지를 소모하는 수단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튼 스미스 같은 학자들은 놀이를 자발적 학습으로 해석하는 등 동물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어린이가 자신의 무기력을 보상하는 수단으로 장난을 친다는 등 동물보다는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사람의 장난은 때론 폭력이나 살인 같은 무서운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 동물적 관점에서는 특히 어린 시절 장난이 일정부분 '장려' 돼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김창엽.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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