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 지상백일장]연말장원 2명 공동수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김세진씨

*** 회복기의 노래

시방 어둠을 뚫고 오는 것은 무엇인가

돌베개 부여안고 밤을 뒤척여 온 나날

불현듯 다 떨쳐 버리고 새 누리를 꿈꾸듯.

머리맡 정수리로 서늘한 별빛 내려

무릎 꿇고 앉느니, 기인 긴 면벽의 시간

가슴 속 다독여온 불씨 또 새벽은 오고 있다.

뼈를 묻어도 좋을 未明의 한복판에

불멸의 징소리로 쌓아 올릴 탑을 본다

그 탑신 상륜부를 치는 새 세기의 날빛을 본다.

"아직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상을 받으면 기쁘다고 하는데 저는 굉장히 부담스럽네요." 중앙시조 지상백일장 연말장원에 당선된 김세진 (36.대구영신초등학교 교사)씨.

본격적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반 남짓. 지난 7~8년 동안 시조를 분석해 가며 읽다 '이제 써봐도 되겠지' 싶어 쓴 작품을 중앙시조 지상백일장에 내봤다. 그 결과 지난 5월 중앙시조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은 것. 그 후 다시 쓴 '회복기의 노래'가 연말장원으로 뽑혔다.

"시조에 푹 빠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제한된 형식 속에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점" 이라고 시조의 매력을 밝히는 김씨는 앞으로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주로 쓰겠다한다.

-남순대씨

*** 탐색

우듬지에 이우는 정적, 하얗게 추억만 남고

지난 여름 우짖던 새의 운문(韻文)도 여직 남아

반음씩 내려 앉으며 잎새들을 지워간다.

인연도 강줄기 하나 저리 멀리 풀어놓고

산 발치 어린 열매 애면글면 품어 안고서

또 다시 가야 할 길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영혼이 빠져 나갈수록 줄어드는 생애의 무게

씻기는 시간들의 다홍빛 풍장사이로

하늘은 투명한 연못, 새 그림자 키워낸다.

"시조를 구닥다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데…첨단산업이 따로 있나요. 신소재 갖고 하면 의류업도 첨단산업이죠." 무역상과 시인은 전혀 다른 천품을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연말장원 남순대 (47)씨의 사연이 한결 흥미로울 것이다.

남씨는 의류무역업 때문에 시조에 새로 눈을 뜨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쪽 구매자들과 교토쯤에서 만나면 전통 정형시인 와카(和歌) 한 자락이 어김없이 흘러나왔던 것. 그 때마다 우리에게도 체질에 맞아 떨어지는 3.4조 음수율의 전통이 있단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의 또하나 관심사는 우리 역사. 전통의 운율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대하 서사시조야말로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픈 꿈이라고 한다.

*** 연말 심사평

올해는 중앙시조 지상백일장 사상 최초로 공동 연말장원을 낸 만큼, 특별히 지난한 심사과정을 거쳤다. 심사위원 전원이 1차 꼼꼼한 시 읽기를 통하여 뽑은 후보자는 강태우.김상기.김세진.남순대.장수현.황진화 6인이었다.

숙의 끝에 4인으로 압축했다가 최종적으로 김세진.남순대의 작품을 두고 장시간 난상토의를 거듭했다. 두 분 모두 투고작 전반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개성이 돋보였다.

남순대는 돌출된 시어가 거슬렸으나, 다른 투고자에 비해 긴장미와 중량감 있는 시적 태도가 장원으로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세진은 종장처리의 미숙함이 지적되었으나, 대상을 읽어내는 신선한 감각과 지성적 접근법이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결국 만장일치로 남순대의 '탐색', 김세진의 '회복기의 노래'를 공동 장원으로 결정, 그 결과를 중앙일보사에 통보하게 됐다.

<심사위원 : 윤금초.박시교.김원각.박기섭.이정환.이지엽.고정국.홍성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