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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 입을 열다, 클래식이 가까이 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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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말 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씨가 닮고자 애쓰는 역할 모델은 음악인이 아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다. “음악 해설자에게도 클래식이라는 상품을 파는 기업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강의 철학이자 비법이다. [콰르텟 엑스 제공]

“비 오는 날, 뭐가 생각나세요. 저는 곱창과 삼겹살, 그리고 라벨이 간절해요.”

듬직한 체구에 장난기가 들끓는 얼굴,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바이올린 하게 안 생긴’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서서 이런 말을 던진다. “라벨도 음악으로 밥 먹고 살아야 했는데, 학교에서 음악 못한다고 욕 먹고 쫓겨나고, 이것 참….” 어려운 이름의 작곡가, 암호 같던 클래식 음악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

최근 ‘말하는 연주자’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조윤범(34)씨가 이 강의의 주인공이다. 속사포 같은 말투와 거침없는 유머로 객석을 흔들어놓은 후 그는 의자에 앉아 악기를 든다. 자신이 속한 현악4중주단 ‘콰르텟 엑스’와 함께 실제 연주를 들려주는 시간이다.

이처럼 연출·대본·강의·연주 1인 4역을 하는 음악회가 부쩍 늘어났다. 무대 위에서 말없이 바이올린 연주만 했던 조씨는 2007년 ‘입을 떼고’ 겸직 해설자로 데뷔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강의 겸 연주를 선보인 이후 그와 ‘콰르텟 엑스’는 해설과 연주가 반씩인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그는 최근 1년 새에 매일 연주 요청이 들어오는 ‘스타’ 연주자로 자리했다.

◆폭넓은 관심=피아니스트 김주영(39)씨 역시 ‘말 잘하는 연주자’ 중 한 명이다. 1998년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새로 나온 CD를 소개하는 ‘리포터’로 데뷔하면서 말솜씨를 알렸다. 일주일에 한 번 길어야 3분짜리였고 “그 중 절반은 그나마 음반 사진만 나가고 원고만 읽는” 작은 코너였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는 KBS 클래식FM의 주말 진행과 실황중계 캐스터 등으로 활동 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세종예술아카데미 ‘클래식 인터뷰’에서는 직접 섭외한 연주자들과 함께 매주 음악회를 연다. 물론 직접 쓴 원고로 입담도 과시한다.

조윤범·김주영씨는 하나의 악기를 다루지만 관심사는 음악 전 분야에 걸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씨는 한 작곡가가 내놓은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두루 소개한다. 김씨는 “피아노를 치면서도 오케스트라, 성악에까지 뻗어있던 호기심은 일종의 취미였다“고 했다. 취미가 직업이 된 셈이다. ‘말하는 연주자’의 조건은 이처럼 음악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꼼꼼한 조사=피아니스트 김정원(34)씨는 최근 ‘청소년 음악회’의 진행자로 데뷔했다. 9~11월 열리는 이 시리즈는 올해 작곡가 베토벤을 집중 탐구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베토벤 발자취를 좇는 ‘투어’를 선택했다. 현지에서 자필 악보와 편지 등을 꼼꼼히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약 2시간 분량의 원고를 직접 쓴다.

조윤범·김주영씨 또한 “한 번의 음악회를 준비하는 데에 평균 한 달여 시간을 들인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는 말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김씨는 얘기하고 싶은 것을 정도껏 절제하기 위해 자신이 진행한 음악회 영상물을 다시 보고 모니터링 한다. 김정원씨는 “매끄럽게 말하는 ‘기술’보다는 강의의 콘텐트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말 잘하고 음악으로 감동도 주려는 연주자들의 노력에 불이 붙었다.

김호정 기자

▶어디서 만날 수 있나?

- 조윤범 ‘파워 클래식’=극동아트TV 매주 금요일 오후 7시/8월28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DS홀 ‘베토벤 현악4중주’

- 김주영 ‘클래식 인터뷰’=9월 3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사전 접수 02-399-1606.)

- 김정원 ‘청소년 음악회’=9월 12일, 10월 17일, 11월 28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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