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략적 '아세안 끌어안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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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남아국가연합 (ASEAN) 의 지역경제통합바람이 심상치 않다.

일본의 '뒷마당' 정도로 인식돼 온 이 지역 경제가 외환 및 금융위기가 몰아 온 회오리바람에 말려 급속한 통합으로 치닫고 있다.

"위기를 겪다보니 이 지역 경제가 하나로 뭉치지 않고서는 글로벌 시장과 경쟁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는 것이 통합의 변 (辯) 이다.

하노이 정상회의에 앞선 9개국 각료회의에서 이들은 통합스케줄을 크게 앞당겼다.

아세안자유무역지역 (AFTA) 설치는 2003년에서 2002년부터로 1년을, 아세안투자지역 설치는 2010년에서 2003년부터로 7년을 앞당겼다.

일부 회원국의 반대를 극복하고 외톨박이 캄보디아를 10번째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협력체로 완벽한 겉모습도 갖췄다.

이번 정상회의에 이들은 '9+3' 이란 이름 아래 한국과 일본.중국 3국을 옵서버로 초대했다.

이들은 역외 대국들의 개입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며 미국이나 유럽.일본.중국 등과 의식적으로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발언권 증대를 노려 왔다.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와 중국의 후진타오 (胡錦濤) 국가부주석, 그리고 한국의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환심사기' 경쟁을 벌인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아세안과의 연간 교역규모는 일본이 1천1백30억달러, 중국이 5백13억달러, 한국이 2백54억달러다.

거대하고 효율적인 이 지역 단일시장에 대비해 미리 발을 들여놓아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무역 및 직접투자와 경제.문화교류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은 본격적인 굳히기에 들어갔고, 중국도 지원확대 약속과 함께 '중.아세안 금융정책특별회의' 정례화를 제의하는 등 환심사기에 바쁘다.

金대통령이 동남아와 동북아를 합친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협력체 필요성을 역설하고 각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동아시아경제협력비전그룹' 창설을 제의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문제는 선언적 제의가 먹혀들기에는 우리가 이 지역에서 일본 및 중국보다 너무 불리하다는 점이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우리 수출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우리의 이미지는 특히 이 지역에서 '친 (親) 미국적' 으로 비춰지고 있다.

통합의 주체들은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한 기술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우리 수출산업이 속히 고도화되지 않으면 이들과의 경쟁관계도 시간문제다.

우리의 세 (勢) 불리를 극복하고 동아시아협력체를 향한 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열린 지역주의는 무역.투자자유화와 보호주의라는 양면을 지닌다.

이들 국가의 최대당면과제는 금융위기극복과 경제회생이다.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한국 입장에서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옵서버 아닌 중요한 일원으로 한몫 할 수 있는 역할개발과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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