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방송]4.일본방송이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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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10~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 TV프로그램 시장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일본 방송사들이었다.

NHK.TBS.NTV.TV아사히 등 일본 주요 방송사들은 공중에 화려한 플래카드를 걸고 현란한 부스를 꾸며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판매 상담도 활발해 대만.중국.홍콩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국.유럽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데 일본 관계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한국. 일본 방송사들은 한국 바이어의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진 것에 대해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대중문화개방 원칙이 발표되긴 했지만, 방송의 경우 가장 늦게 개방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국제시장의 이같은 열기는 다소 의외다.

일본 TBS미디어사업부 이토 유타카 (伊藤豊) 차장은 "한국 방송 관계자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며 "트렌디 드라마는 물론 사무라이 드라마까지 구매 상담을 해오고 있다" 고 말했다.

TV아사히 비즈니스국 나카이 모토코 (中井幹子) 판매담당은 "진지하게 구매 의사를 타진해오는 것은 물론, 공동제작에 대한 제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고 밝혔다.

한 일본 방송사 관계자는 "요즘 회의때마다 한국 얘기가 빠지는 적이 없다" 면서 "기대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 고 전했다.

그러나 업계의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아직 국내 사정은 안개속. 영화.비디오가 개방됐지만 방송에 대한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얼마전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개최한 '일본방송 개방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및 과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일본방송 수입 심의.편성기준 마련의 필요성 등을 제기한 바 있다.

만약 정부의 뚜렷한 입장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 업계가 일본 프로 수입이나 공동 제작을 경쟁적으로 추진할 경우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늘 업계가 정부보다 빠르고, 당국이 현장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해왔다.

당국의 확고한 방침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싱가포르 =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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