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굴 위한 민간인 사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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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찰이 민간인 사찰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일선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후 경찰청의 지시에 따라 각급 민간단체 관계자와 정.관.재계를 비롯한 노동.종교.언론계 주요인사들의 성격과 취미, 정치적 성향이나 배후관계를 파악하는 등 사찰 활동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요인 사찰은 60년대 초기 군사정권이 정보.공작정치를 위해 시작된 독재정치 상징 중의 하나다.

이같은 사찰자료가 권력층의 흥미를 끌게 되자 당시에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경찰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사찰활동이 반공개적으로 행해질 정도였지만 폭압적인 정치권력 아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이같은 사찰은 국민들의 저항감을 불러일으켰고 이같은 감정은 90년 국군 보안사 (현 기무사) 의 민간인 사찰 폭로로 절정에 달했다.

보안사가 카드를 만들어 놓고 각계 유명인사들을 사찰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방부장관.보안사령관이 문책, 경질됐던 것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이를 국가의 국민기본권 침해행위로 인정하고 1백45명에게 1인당 2백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같은 부작용이 계속되자 경찰도 94년 김영삼 (金泳三) 정부때 공식적으로 민간인 사찰 활동 중지를 선언했던 것이다.

경찰이 이 시점에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은 민간인 사찰이 아니라 학원.노동 등 사회단체와 주도적 인물에 대한 동향 파악으로 통상적인 치안정보활동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규정에 따른 일상적인 업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에 시달한 내용에는 단체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관내 거주하는 유명인사의 신상명세까지 파악하라고 돼 있다니 이는 분명한 개인 뒷조사다.

특히 '인물존안자료' 카드에 대상자의 학력.경력.성격.소행.취미.정치적 성향.배후관계까지 기재토록 돼 있는 것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는 누가 봐도 치안정보 수집 차원을 넘은 공권력의 사생활 침해요, 불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인권보호다.

여야 교체로 새 정부의 핵심에 과거 공권력에 당한 피해자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가지 원인일 것이다.

인권법을 만들고 인권위원회 설치를 서두르고 있지만 국가기관이 이처럼 기본권 침해를 일삼는다면 아무리 법을 제정하고 기구를 만들어도 인권보호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 기회에 다시는 민간인 사찰이 고개를 들 수 없도록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불법사찰로 얻어진 정보에 대해 권력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경찰의 민간인 사찰 파동을 확실하게 조사해 그 내용을 공개하고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의식을 갖고 있는 관계자들을 엄중 문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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