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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재벌구조조정' 실업 한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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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대 기업그룹 구조조정 때문에 안 그래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실업한파가 한층 더 가중될 것 같다.

5대그룹의 사업교환 (빅딜) 및 퇴출대상 기업에 종사하는 인원이 17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이는 숫자가 적게는 3만명, 많게는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고용승계 보장을 내걸고 무기한 농성 등 총력투쟁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동계와 진보적 사회단체들은 재벌해체를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주장해 온 세력들이다.

이들과 국제통화기금 (IMF) 을 업은 미국 경제계의 끈질긴 한국재벌 해체주장이 이번의 5대재벌 구조조정을 이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재벌경영체제가 해체되게 된 것을 두고 30년래의 숙제를 푼 것이라면서 축하의 분위기가 치솟고 있다.

주식값이 오르고 시장이자율이 사상최저점을 친 것이 이번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거둔 수확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것이 빛이라면 실업은 거기에 따르는 불가피한 그림자일 것이다.

재벌해체에는 이러한 그림자가 따른다는 것을 노동계가 예견하지 못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실업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눈앞이 캄캄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실업이 재벌해체 요구를 달성하는 데 치른 대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노동계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지금 기업은 실업자 흡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기업 자체도 살아남기에 벅찬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후퇴하고 있는 경제가 하루속히 바닥을 칠 날을 기다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실업자의 일자리 복귀와 그때까지의 생계대책은 오로지 정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

마침 정부는 내년 상반기중 25조원의 경기부양자금을 풀고 중앙은행의 이자율 가운데 하나인 환매조건부채권 (RP) 금리를 5%선으로 내리겠다고 나섰다.

지금은 이런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펴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일자리 늘리기 대책이다.

정부의 경기대책이 효과를 내면 기업도 경기회복을 타고 구인 (求人) 을 늘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는 이런 사정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고용승계 보장 총력투쟁 등을 벌인다는 것은 그만큼 역효과를 낼 뿐이다.

다시 말해 경제회복이 그만큼 늦어지며 실업사태는 그만큼 악화되고 장기화된다.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제부터 노동계도 투쟁을 벌이기보다 노사협력과 경기회복 대책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재벌해체 이후 우리 경제 앞에 놓인 최대의 급선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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