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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빅딜 야전사령관 강봉균 경제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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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8년 연말의 화두 (話頭) 는 '재벌개혁' 이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메가톤급 빅딜에서 내로라 하는 5대 그룹 주력 기업들의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 선정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개혁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개혁작업의 야전사령관이 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이라면 작전의 전체 구도를 짜는 사령탑은 청와대 강봉균 (康奉均) 경제수석이다.

재벌개혁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그동안의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기도 하지만 내년부터 정부가 본격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는 개혁의 큰 그림이 완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 현안이 현안인 만큼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부터 질문드리겠습니다.

5대 그룹 7개 업종 빅딜이 막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약속한 날짜까지 잘 마무리될까요.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종은 오는 15일까지는 다 될 것 같습니다.

반도체도 어떻게 통합해 어떤 식으로 7대3의 지분구조를 만들 것이냐, 또 경쟁력있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재무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 하는 원칙은 15일까지 정해질 겁니다.

다만 최대 지분을 가질 회사가 어디가 되느냐는 외국 컨설팅업체에 용역을 줬는데 이 업체 얘기가 실사를 위해 12월말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가 최대주주가 되느냐는 12월말까지 기다려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

- 7개 업종 빅딜 외에 5대 그룹 주력기업도 워크아웃에 넣겠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 경영권은 어떻게 됩니까.

"경영권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은행도 출자전환을 한꺼번에 해주지 않고 경영 상태를 봐가며 조금씩 나눠 해줄 겁니다. "

-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가 재벌개혁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재벌들의 구조조정 성과를 점수로 매긴다면 몇점이나 될까요.

"기본적으로는 재벌개혁도 제도적 접근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재무구조 개선만 보죠. 내년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로 낮추기로 했다면 차근차근 줄여나가야 하는데 올해 부채가 오히려 늘었습니다.

외자유치 실적은 목표액의 20%에도 못미칩니다.

부동산을 토지공사에 팔면 은행 빚과 상계할 수 있도록 규정까지 고쳐줬는데 정작 내놓은 물건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 정작 시한이 됐을 때 재벌들이 도저히 약속을 못지키겠다고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것으로는 재벌들이 약속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정부가 믿을 수 없습니다.

점수로 치면 50점 미만입니다.

더욱이 재벌개혁은 이제 재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회생과 직결돼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금융개혁을 했다지만 재벌개혁이 마무리되지 않는 한 금융부실 요인이 언제나 잠재해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고 있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구조조정 점수가 연말까지 80점 이상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 은행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논의가 한창 진행되다 다시 후퇴한 것 같습니다.

재벌의 은행소유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재벌구조가 1~2년 후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이 때가 되면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우선 계열사간 빚보증이 모두 없어집니다.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 계열사간 거래 내역이 모두 드러납니다.

부채비율도 2백% 아래로 떨어질 것이고 소수주주의 권한이 강화되는 등 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견제할 장치도 갖춰집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재벌이라고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는 식의 규제가 필요없어질 것이란 뜻입니다. "

- 지주회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렇습니다.

재벌개혁이 완결되면 현행 지주회사 설립법에 있는 각종 제한을 다시 한번 손볼 겁니다. "

-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 김에 금융 쪽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올해 금융계는 무더기 퇴출사태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올해와 같은 외형적 구조조정은 더이상 없는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하드웨어 구조조정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얼개는 대개 마무리지어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내부 경영방식과 패턴을 바꿔나가는 소프트웨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큰 기업에는 무조건 대출을 내주면서 중소기업은 안주고 하는 식이 아니라 기업이 대출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노하우를 길러야 한다는 얘깁니다. "

- 올해 금융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지만 부실채권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부실채권을 국제통화기금 (IMF) 이 권고한 기준, 즉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으로 따져보면 최근들어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부실채권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요주의 여신, 즉 3개월 미만 연체 대출의 대부분이 결국 부실채권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인데, 이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이라고 봅니다.

요주의 여신은 경기에 따라 얼마든지 정상 여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한빛은행 행장 인선과정에 뒷말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95% 지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여기에 공개적으로 개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전처럼 장관이 추천해 청와대가 '예스.노' 하는 행장 인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외부 청탁에 의해 행장이 된 사람은 결국 외부 부탁을 받아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앞서 말씀드린 은행의 소프트웨어 구조조정도 불가능해집니다. "

-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 분배구조가 악화되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보는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은 있으신지요.

"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경쟁력없는 부문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경기가 나아지더라도 인위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은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것보다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

- 일반 국민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갖게 되는 또다른 불만은 공공부문의 고통 분담이 미흡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공기업은 24개중에 11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민영화할 것입니다.

자회사도 80% 이상 민영화됩니다.

이런 조치들의 시행이 내년에 몰려있습니다.

따라서 내년이 되면 다음 차례가 공공부문이었구나 하는 것을 국민들도 실감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

- 다른 한편으로 내년에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핵심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인력이 대규모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실업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차피 일자리는 나라 전체로 보아야 합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면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미국도 80년대 후반 5년 동안 실업이 크게 늘었지만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는 늘어난 실업자의 몇배나 되는 고용 창출이 일어났습니다. "

- 그 말씀은 최근 경기가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 같습니다.

경기는 언제쯤 회복국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십니까.

"이르면 내년 1분기, 늦어도 2분기부터는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리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내년 전체로는 2~3%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 그런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2~3% 성장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낙관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올해 성장률이 - 5~ - 6%나 됩니다.

따라서 내년에 2~3% 성장해봐야 IMF 이전 수준에 못미친다는 얘깁니다.

IMF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려면 2000년 말에나 가야 할 것입니다. "

- 긴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 = 정경민 기자

[강봉균 수석은…]

강봉균 경제수석은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꼭 30년을 맞는다.

군산사범을 나와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 상대에 늦깎이로 입학해 행정고시를 패스한 후 공무원으로 변신했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주로 기획파트 일을 맡아왔고 기획원 출신 호남 인맥의 대표주자중 한 사람으로 꼽혀왔다.

康수석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과거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한 사람이었다는 전력을 의식한 듯 "속죄하는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다" 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43년 전북 군산 출생

▶61년 군산사범학교 졸업

▶69년 서울상대 졸업

▶69년4월 행시 6회

▶이후 93년까지 경제기획원에서 경제기획국장.차관보.대외경제조정실장 등 역임

▶93년 12월 노동부 차관

▶94년 10월 경제기획원 차관

▶94년 12월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

▶96년 8월 정보통신부 장관

▶98년 2월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

▶98년 5월 청와대 경제수석

▶89년 '한국의 경제개발전략이 소득분배구조에 미친 영향' 으로 한양대 경제학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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