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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내집’ 보다 임대 미국 주택정책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주택 소유자의 사회(Ownership Society)’.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5년 재선 후 취임식에서 처음 들고 나온 구호다. 미국 서민이 모두 자기 집을 소유하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부시 정부의 주택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서민도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쉽게 각종 대출 규제를 없앴다. 봉급생활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대출이자만큼 세금을 깎아 주기도 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거들었다. 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2001년 3월부터 13차례에 걸쳐 6%이던 금리를 1.25%로 낮췄다.

그 덕에 부시의 구호도 처음엔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집값이 뛰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서민도 ‘대박’ 꿈에 편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저금리에 정부지원까지 얹히자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그러다 2007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재앙이 닥쳤다. 대출을 받아 산 집이 독약이 된 것이다. 갚을 능력도 안 되면서 빚을 낸 수많은 사람이 은행에 집을 차압당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은행엔 경매에 넘겨진 집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로 인해 부시 정부가 추진해온 주택 소유 장려 정책도 용도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고 보스턴 글로브가 16일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후 서민의 주택 소유에 맞춰져 있던 주택정책을 임대주택 공급 쪽으로 방향전환했기 때문이다. 이를 앞장서 주도하고 있는 건 주택 및 도시개발부(HUD)의 션 도너번 장관이다. 그는 부시 정부 때부터 주택 소유 장려 정책을 비판해온 인물이다. 도너번은 “부시 정부의 실정 때문에 수많은 서민이 갚을 능력도 안 되는 빚을 얻어 집을 샀다가 망했다”며 “모든 서민이 집을 소유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이후 달라진 금융여건도 정책 변화를 불가피하게 했다. 파산하는 사람이 급증하다 보니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상당수 은행은 아예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미 차압한 주택도 너무 많아 더 이상 주택을 담보로 잡기 곤란해서다. 부동산시장 조사기관인 리얼티트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집을 차압당한 사람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늘었다. 이 때문에 빈집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보급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HUD는 이미 정부로부터 받은 경기부양자금 140억 달러 중 42억5000만 달러를 임대주택 공급에 투입하기로 했다. 추가로 40억 달러는 기존 공공주택 보수에 쓸 예정이다. 경기부양자금 말고도 의회로부터 임대주택 건설용으로 18억 달러의 예산을 받아둔 상태다. 워싱턴 싱크탱크 도시연구소 마거리 터너 부사장은 “집이 필요해진 사람은 많은데 빈집은 계속 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빈집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에선 여전히 주택 소유 장려 정책의 순기능을 옹호한다. 헤리티지재단의 데이비드 존 선임연구원은 “누구든 집을 소유하는 순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다”며 “주택 소유 장려 정책은 범죄를 줄이는 등 사회 안정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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