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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한여름 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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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팀은 기진맥진한 것 같고 이대로 가다간 오래 고생하게 되어 있다. 이젠 기적 같은 일이나 일어나길 기대해야겠다. 과거에도 몇번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었으나 밖에서 한번 좋은 바람이 불자 콱 막힌 것 같던 경제가 거짓말같이 풀리기도 했다. 1차 오일쇼크 후의 중동 특수, 1980년대 중반의 3저(低) 효과가 대표적이다.

*** 밖으로부터 큰 바람 불어야

우선 바깥으로부터 큰 바람이 불어야 한다. 세계경제가 그냥 좋아지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우리에게 특수(特需)를 갖다줄 수 있는 그런 바람이다. 가장 좋은 바람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잘 타결되는 것이다. 그것이 리비아식으로 되든, 다른 유사한 방식이 되든 북핵문제의 해결은 우리 경제에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북핵 해결 대가로 미국은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약속한 바 있는데 체제보장과 아울러 상당한 경제지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의 직접원조도 있을 것이고 국제적 공동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60년대 한국이 경제개발을 시작할 땐 미국과 국제기구가 중심이 되어 대한(對韓) 국제경제협의기구를 만들고 거길 통해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썼다. 당시 일본의 청구권 자금이 큰 역할을 했는데 경우에 따라선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와 대규모의 청구권자금 등이 들어가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한국경제에 특수 바람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 외국 자본의 유입이 좋아지고 그런 무드 때문에 소비와 투자부진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또 같은 민족을 사랑하자는 사람이 많으니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해 주40시간 근무를 4시간쯤 늘려 그걸로 북한 경제를 돕자는 운동이 벌어질지 모른다. 일하는 분위기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북핵문제가 확실히 해결될 기미만 보여도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될 것이다.

과거 바깥에서 좋은 바람이 불 때 안의 준비와 대응이 절묘했다. 중동 경기가 불었을 땐 온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그걸 붙잡는 정책을 썼다. 중동에서 공사만 따오면 은행에서 무조건 지급보증 해주고 갖은 지원을 다 했다. 그것이 나중에 부작용을 빚기는 했지만 처음 공사를 따오고 중동특수를 일으키는 덴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땐 기업가정신이 넘치고 온 나라가 그걸 뒷받침했다.

3저 바람이 불 때도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 앞 몇년간 가혹한 안정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를 잡고 경제 체질을 개혁해 놓았다. 그래서 국제유가와 금리가 떨어지고 일본 엔화가 강세가 되는 3저 호기가 오자 그것이 경제호황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바깥 바람이 경제에 훈풍이 되려면 안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바로 먹고 사는 문제에 가장 비중을 두고 그걸 위한 실용주의 정책의 실천이다. 그동안의 여러 시행착오가 좋은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장보다 경제균형에 비중을 두고 시장경제 논리에서 멀어지면 어떤 결과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모두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면 전체 경제를 좋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장경제 실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한다. 마치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했던 것처럼 경제를 잘 되게 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그걸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고쳐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혁이다. 실용주의적 전문가집단이 전면에 나서고 꿈의 토론보다 피부에 와닿는 목표와 실행이 따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 소모적인 일이나 이념, 역사논쟁은 뒤로 밀릴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손과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 기회 붙잡을 준비 돼 있는가

이런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없이 경제회생은 어렵다. 바깥에서 좋은 바람이 불고 그것이 경제회생으로 연결되는 일이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이 될지, 과거 그랬던 것처럼 그런 꿈 같은 일이 일어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운(運)이기도 한데 이제까지 우리가 강운(强運)이었다는 것이 한 가닥 위안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