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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MB ‘신평화구상’ 좀 더 다듬을 필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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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신평화구상은 ‘비핵·개방 3000’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북한 경제 회생을 위한 국제협력 프로그램 실행과 대북 5대 개발프로젝트 추진이 주요 내용이다.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도 포함됐다. 또 이 구상은 ‘비핵·개방 3000’에서 ‘개방’ 부분을 빼 ‘비핵 3000’으로 단순화한 것 같다.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현실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군축 제안을 한 것은 전향적이다. 현재의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고, 북핵 문제가 답보 상태에 있어서 그렇다. 보수정권이어서 더 그렇다. 현 시점에서 군축 제안의 현실성에 대한 회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의미 있는 제안이다.

일관성이란 차원에서 이번 제안은 이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한 것이라고 본다. 보수층을 의식해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 갈지자 행보보다는 일관성이 안정감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다 획기적인 대북 제안으로의 점프가 가능하다고 본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보수정권인 공화당 정권이 전향적인 대중 정책을 취해 미국민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경축사 제안이 미국의 대북 ‘포괄적 패키지’ 안과 유사한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한·미 간 사전 조율의 느낌도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론 이번 제안이 미국이 얘기하는 ‘포괄적 패키지’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확인하려 할 것이다. 북·미 간 포괄적 패키지 논의가 진전되면, 신평화구상의 의미도 커질 것이다.

문제는 당장 북한의 반응이다. 일단 부정적일 것이다. 북한은 이번 구상이 기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선 비핵화’라는 전제가 불변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비핵·개방 3000’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선 체제 안전 보장, 후 비핵화’ 입장인 북한이 ‘선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이 대통령의 남북 관계 발전 전략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선언의 이행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할 것이다. 오늘부터 당장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시작한다. 이것도 우리 정부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북한은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로 남북 관계를 보고 있다. 북·미 관계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서서히 강(强) 대 강(强)의 대결구도에서 실리관계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여전히 경색 국면에서 샅바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불균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북·미 관계 변화 속도에 남북 관계가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우리 측의 대북 지렛대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발언권 약화를 의미한다. 북·미 관계 진전에 남북 관계가 병행하는 구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선 ‘신평화구상’에 북한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는 내용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보다 선제적인 대북 메시지를 기대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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