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제2부 16.금강산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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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박6일의 짧지 않은 금강산 답사를 모두 마치고 이제 평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그래도 우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식사는 차 안에서 빵으로 때우기로 하고 만물상에 다시 오르고자 오전 7시에 현관으로 모였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우리를 보면서 금강산호텔 수위원은 언제나 그랬듯이 길을 비켜 게걸음으로 기둥에 바짝 붙어 섰다.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우리를 피해 다녀 모두들 관광학교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 출신 수위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닷새를 묵는 동안 우리는 항상 현관에서 집결했는데 닷새동안 매일 날씨가 흐리니까 나오는 사람마다 혹시 그에게서 희망어린 대답이라도 들을까 해서 "오늘 날씨가 개겠습니까?" 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물었던 것이다.

대개는 나, 권영빈 단장, 고은 선생, 김주영 선배 순서로 물었고 어떤 날은 유영구 팀장, 김형수 차장에 북측 안내단장 조광주 참사까지 가세했으니 수위로서는 난감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기상통보관도 아니고 날씨 나쁜 게 그의 탓도 아닌데 매일 딴 말은 없고 날씨만 물어오니 도망치듯 슬슬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답할 때는 꼭 뒤통수를 긁적이는 바람에 그 큰 수위모자가 몇번씩 들썩거리게 하고는 늘 한가지로 대답했다. "글쎄요, 좀더 있어 봐야겠습니다. "

그 뜻은 잘 모르겠다는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 그저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어질기 그지없는 동무였다.

그리하여 세번째로 만물상에 도전하기 위해 한하계 (寒霞溪) 골짜기로 오르는데 습기를 한껏 머금은 계곡 어귀 솔밭의 미인송 (美人松) 들은 그 줄기가 더욱 붉고 날씬해 보이는 것이 여간 교태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늘씬한 미인들의 도열이 끝나면서 말발굽보다는 차라리 머리핀처럼 휘어 돌아가는 고갯길로 올라서는데 차창 밖으로는 계곡에 엉켜있던 짙은 안개가 서서히 피어나며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날이 개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개 중턱 육화 (六花) 폭포에 이르러서는 장마철에나 만난다는 이 계절폭포를 맘껏 사진으로 찍어가는 큰 행운도 있었다.

그러나 만상정 주차장에 당도해 보니 만물상 골짜기는 짙은 구름 속에 갇혀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는 금강산 관리원을 또 만났다. 벌써 세번째다.

특히 그는 접때 멀쩡한 산을 보고도 곧 구름이 내려와 올라가 봤자 아무 것도 못 본다고 귀신같이 날씨를 알아보는 신통력이 있었다.

나는 또 물었다. "오늘도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빨리 올라가면 볼 수 있습니다. "

뜻밖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나는 "정말요?" 라며 날뛰는데 김주영 선배는 다그치듯 그에게 또 물었다. "여보시오! 지금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올라가면 볼 수 있단 말이오? 확실하게 다시 대답해 봐요. 우리 헛고생 시키지 말고. "

그러자 관리원은 金선배를 멀끔히 바라보고는 마치 논산훈련소 훈련병처럼 악을 쓰며 대답했다. "볼 수 있습니다!" 그 대답에서 나는 '포레스트 검프' 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꼭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희망을 갖고 오르게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구름은 위로 계속 올라가며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삼선암 (三仙巖)에 올랐을 때는 상.중.하 세 봉우리가 완연히 나타났다. 그 장쾌하면서 날카로운 맛이란 일찍이 소정 변관식이 '외금강 삼선암' (1959년작)에서 보여준 그 드라마틱한 구도 그 자체였다.

여기서 다시 15분쯤 오르자 이번에는 절부암 (折斧巖) 의 절경이 펼쳐졌다.

통나무를 도끼로 내려칠 때 생기는 도끼 이빨자국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형상은 그야말로 만물 (萬物) 의 초 (草) 를 잡는 듯한 만물초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 장관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순간 올라만 가던 구름이 급속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조금 더 있다가는 삼선암도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고은 선생과 유영구.김형수 차장은 되든 안되든 천선대 (天仙臺) 까지 오른다고 올라갔지만 무릎이 시원치 않은 김주영 선배와 간이 부실한 나는 허탕치지 말고 몸보신하자며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떠도는 잔운 (殘雲) 들이 삼선암 세 봉우리에 걸쳤다가는 빠져나가고, 내려앉았다가는 다시 올라가는 환상적인 풍운의 조화를 넋놓고 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만상정에 내려오니 그 관리원이 전에 없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만물상 멋있었죠?" "아뇨, 우리는 못 보았는데요. " "못 봤어요? 나는 여기서 천선대를 훤히 올려다 보았는데요?" "우리는 절부암까지 갔다가 왔는데 구름이 내려왔다가 다시 또 올라갔단 말입니까?" "아니, 그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아, 축구공이 내려와야 또 올라가는 것도 모릅니까?" 그는 자연의 원리를 자기 경험으로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금강산 날씨에 대한 관리원의 예지력은 이처럼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을 앞지른 초감각의 짐승" 이었다.

그는 비록 다른 일에 있어서는 남들이 아둔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금강산을 지키며 금강산을 관리하면서 금강산과 더불어 호흡하는 일에서는 그를 능가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시 그런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미 8년째 금강산을 지켜왔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한사코 가르쳐주지 않더니 남조선에 가서 금강산을 자랑시키자면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 "필요없습니다! 장영철입니다!" 나는 김주영 선배와 함께 그가 느낀 금강산, 그가 체득한 금강산을 물었다.

그는 배운 것이 적고 글이 모자라 보였지만 감성만은 대단히 발달해 저 나름의 구비문학으로 대답하고 설명해 주었다.

그 말끝마다 어린 금강산에 대한 자랑의 감정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가 금강산에선 아내의 숨소리도 들리고 장군님이 호령하는 소리도 들린다고 해서 내가 어쩌나 보려고 "혹시 동료일꾼이 코고는 소리는 안 납니까?" 하고 물으니 벼락같이 소리질렀다.

"그런 돼먹지 않은 소리가 금강산에서 왜 납니까!" 나는 비록 천선대에 올

라 만물상을 굽어보지 못했지만 이 천진스런 금강산 사나이와 무공해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정말로 행복했다.

이윽고 우리는 금강산을 떠났다. 버스가 한하계를 내려와 호텔 앞을 지날 때 현관 정면에 열중쉬어 자세로 우리쪽을 바라보는 수위원 동무가 보였다.

나는 큰소리로 장난기를 넣어 작별인사를 던졌다. "오늘 날씨 개겠습니까?" 그러자 수위원은 거수경례까지 하며 큰 소리로 여태와는 다른 대답을 했다.

"예, 개겠습니다!"

글 = 유홍준 (영남대 교수.박물관장)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다음은 "발해 건국 1300년 특별전"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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