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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제6장 두 행상

눈치를 보자니, 그들도 외출했다가 금방 여인숙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술을 마신 결과 때문은 아니었다.

승희가 방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그녀에게로 꽂혔다.

그러나 대꾸는 시무룩한 승희보다 변씨가 대신했다.

"그만했기 망정이지, 일이 크게 번졌더라면, 뜨내기 장돌뱅이들과 농민들이 정면 대결해 장바닥이 한번 뒤집혀서 지각변동 일어날 뻔했지. 그래도 장돌뱅이들 안목이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치판보다는 한결 점잖아. 원한과 증오가 난무하고 서로를 헐뜯기만 일삼아서 이제 와서 남은 것은 악감정뿐인 게 정치판 아닌가.

그래서 시방은 누가 암까마귀인지, 누가 수까마귀인지 알 수 없게 돼뿌렀어. 조금이라도 뒤가 구리다 싶으면 들고 있던 식칼로 가차없이 까발리고 도려내서 세풍이니 총풍이니 헐뜯고 씹어뱉느라고 눈깔들이 시뻘게졌어. 철천지원수들끼리처럼 치고받는 것에만 골돌해 있어서 양보나 겸양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어. 전라도는 못해도 여당이고, 경상도는 잘해도 야당이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나라가 바로 설까. 그런데, 큰 대자와 갈 지자를 구별 못한다는 장돌뱅이들은 그렇지가 않아. 척하면 호박 떨어진 줄 알아. 소를 풀어 놓으면 제 집으로 간다는 것을 몰라서 고삐를 매어 두었겠나. 응당 소동이 크게 번질 것을 십분 예견하고 매어 둔 그 깊은 너름새를 보면 심성들이 고결하다는 평판까지 들을 만하다구. "

"이제 그만하세요.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 치매라는 걸 몰라서 그럽니까?"

머쓱해진 변씨가 눈길로는 승희를 가리키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봐, 한선생 치매라니? 꼭 아픈 데를 찔러야 속시원해? 승희는 처음 듣는 얘기잖어. " "치매 아니거든 이제 그만 잠자코 계세요. " 철규와 변씨 사이에 억죽박죽 언쟁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히죽히죽 웃기만 하던 태호가 느닷없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 끼어들었다.

"선배님들. 초가삼간 불태워도 빈대 잡는 게 속시원하다는 속담 있죠? 그런 생각 안드십니까? 오늘 그 북새통에도 윤종갑이나 배완호를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을 요사이는 스토킹이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사연입니까?"

철규는 가만 있었지만, 무안을 당했던 변씨가 물었다.

"스토킹이라니? 그건 또 어느 날벼락에서 떨어진 물귀신이어?"

"어, 대선배 똑바로 맞히셨네. 이게 서양에서 건너온 신종병인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선 옛날부터 있어 왔네요. 물귀신 전매특허가 한밤중에 우물 뒤에 소복하고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발목 잡고 늘어져서 사람 기절시키는 거 아닙니까. 스토킹이 바로 물귀신 작전이란 거죠. 복잡한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범죄유형이라 하데요.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도시의 익명성이나 통신개방으로 얽히고 설킨 개인정보의 노출 때문에 지켜져야 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자신도 모르게 통째로 노출되는 거예요.

그런 결과 상대가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뒤따라 다니며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말하는 거예요. 바로 누나 뒤를 미행하는 배완호나 조창범 같은 사람들이죠.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의 행동에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계속 접근하거나 미행하면서 온갖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짝사랑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겁니다.

순수한 짝사랑은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잖아요. 주로 유명세를 치르는 연예인들이 당하는 신종병이랍니다. "

방안에는 일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미행이 끈질기더라도 일절 관심두지 않기로 작정한 일이긴 하였지만, 돌이켜보니 정말 그 지긋지긋하던 스토킹이 스톱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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