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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임씨' 600년 집성촌 "3만기 조상 묘 어찌할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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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 임씨 종친들이 6일 중시조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들은 제사가 끝난 뒤 수도 이전 반대 성토대회를 열었다. [연기=양광삼 기자]

수도 이전 문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가리는 사태로 번진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도 이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충남 연기군 남면 일대에 600년째 살고 있는 부안 임(林)씨 종친들이다.

6일 오전 10시 충남 연기군 남면 금강변에 자리잡은 이 종친의 사당. 고려 때 공조전서(지금의 건설교통부 장관에 해당)를 지낸 중시조 임난수(1342~1407)장군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종친 200여명이 모였다. 중시조란 문중에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을 말한다.

오랜만에 만난 종친들은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수도 이전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우리 문중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낼 작정인가."

부안 임씨 전서공파 대종회 총무 임헌인(62.연기군 남면)씨는 "집성촌과 선조들의 묘 3만여기가 여기에 모두 있는데 이곳에 수도가 들어선다면 우리 문중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청산(62.대전시 월평동)씨는 "수백년 지속될 수도를 옮긴다면 영광으로 알고 땅을 선뜻 내놓겠다"며 "그러나 국민 합의도 못 끌어낸 상태에서 우리의 터전을 어떻게 내놓느냐"고 말했다.

임영환(72.공주시 장기면)씨는 "새 수도를 이곳에 짓겠다고 결정한 사람들도 자기 조상 묘가 파헤쳐지는 아픔을 느껴봐야 할 것"이라고 결기를 세웠다. 실제로 새 수도(2100여만평)가 들어설 지역은 부안 임씨가 대대로 모여 살던 곳을 모두 포함한다.

40여분 만에 제사가 끝나자 종친들은 곧바로 총회를 열었다. 종친회장 임광수(76.임광토건 회장)씨는 "불행하게도 우리 삶의 터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가슴이 메는 것 같다. 슬기롭게 이 난국을 헤쳐가자"며 문중의 일치단결을 부탁했다.

총회는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특별대책위원회 구성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종친회는 조만간 전국 종친들의 서명을 받아 수도 이전 반대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고 구체적인 반대운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임씨 종친회는 지난달 16일 서울에서 열린 수도 이전 공청회 때 40여명이 상경,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종친 1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수도 이전 중단 헌법소원'에 찬성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헌법재판소에 내기도 했다.

남면사무소에 따르면 6일 현재 남면 인구 9078명 가운데 부안 임씨는 1962명으로 21.6%를 차지한다. 통계청의 2000년 인구센서스 결과 부안 임씨는 전국 6만3589명으로 전체 4179개 본관 중 117위를 차지했다.

대전대 유재일(47.정치외교학) 교수는 "새 수도 건설이 필요하지만 보상 및 주민 이주 대책, 생업 수단 마련 등 앞으로 정부가 세심하게 챙겨야 할 분야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조한필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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