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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채질 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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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언행이 매우 위태롭다. 그는 어제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4대 강 사업은 낙동강 사업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예산의 60%는 낙동강으로 가고, 다른 3강은 들러리”라고 주장했다. 4대 강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간 감정을 자극하여 반대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이다. 지난 10년간 집권까지 했던 제1야당의 당수가 내뱉은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정 대표는 최근 잇따라 지역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광주를 방문해 “호남 인사를 공직사회에서 씨를 말린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 신문이 조사한 통계를 보면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영남 출신 비율(36.5%)도 노무현 정부 때(39.7%)보다 줄었다. 호남 출신(18%)도 김대중 정부 때(22.8%)보다 줄었으나 ‘호남 씨 말리기’란 표현은 지나치다.

어느 지역이 더 혜택을 보느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전국 정당을 자처하는 공당의 대표라면 최소한 특정 지역의 대변인으로 행세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논리적 근거조차 없이 국민을 분열과 갈등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정 대표는 “절대평가가 확실하다면 비교평가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논리적 굴복과 다름없다. 같은 당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이 지적한 대로 민주당이야말로 정 대표(전북)-이강래 원내대표(전북)-박지원 정책위의장(전남) 등 핵심 요직을 호남 출신이 독식하고 있지 않은가.

지역 간 갈등으로 가장 피해를 입어온 것이 호남 출신이다. 그런 망국적 지역 감정을 또다시 자극해서는 그 지역 주민이나 민주당 모두 얻을 것이 전혀 없다. 특정 지역 정서를 업고 당내 세력을 확장하려는 일부 정치인이나 잠시 이익을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민족 앞에 죄를 짓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중한 것을 계기로 전·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문병했다. 대다수 국민은 이것을 동서화해의 계기로 삼고 싶어 한다. 정 대표는 이런 기대를 받들어 좀 더 언행에 신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