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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연기한 은행강도 압권…일본 영화 '하나-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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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해방 이후 일반극장에 내걸리는 첫 일본영화로 '하나 - 비' 가 다음달 5일 개봉된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돼 높은 인기를 얻었고 기타노 다케시 (51) 감독도 직접 방문해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널리 알린 탓에 '하나 - 비' 는 일본영화치고는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편에 속한다.

그런 만큼 영화계에서는 이번 '하나 - 비' 의 개봉을 일본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반응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사실 그동안 이런저런 영화제를 통해 일본영화가 소개될 때마다 이상열기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개방만 되면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한정된 매니아층이나 호기심 차원에서의 관심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아무튼 최근 일본영화 수입을 둘러싸고 업자들의 과당경쟁과 거기에 편승한 일본측의 '가격 높이기' 가 심각한 상황이고 보면 '하나 - 비' 의 성패가 향후 업계 움직임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은 확실하다.

꽃을 뜻하는 일본말 '하나 (花)' 와 '불' 이라는 뜻의 '비 (火)' 를 하이픈 ( - ) 으로 연결시켜 놓은 제명에서 보듯이 영화는 정적인 것과 다이나믹함, 아름다운 것과 폭력적인 것의 대위법 위에 서 있다.

야쿠자 소탕 전문형사인 니시 (기타노 다케시) 의 아내는 말기 암을 앓고 있다.

니시가 잠복근무 중 동료들의 호의로 아내의 병문안을 간 사이 동료이자 친한 친구인 호리베가 불의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고 후배경찰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분노한 니시는 범인을 찾아내 마지막 총알까지 다 퍼부으면서 죽인 뒤 경찰직을 그만둔다.

하지만 아내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빚독촉에 시달린 그는 경찰 유니폼을 입은 채 은행을 턴다.

그는 훔친 돈을 부인으로부터 버림받고 그림의 세계에 빠져든 호리베와 후배경찰의 미망인을 위해 쓴 다음 아내와 함께 마지막으로 바다여행을 떠난다.

TV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왕성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기타노 감독은 영화로 넘어오기만 하면 만담가로서의 옷을 완전히 벗어버린다.

경찰 역을 맡든 야쿠자로 나오는 그는 언제나 말수가 적다.

마치 '스크린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는 태도다.

이같은 대사의 희소성은 이미지를 보다 날카롭고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은행강도 장면이 압권이다.

니시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유유히 여행원으로부터 돈 꾸러미를 받아내는 모습을 은행의 감시 카메라 모니터로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도쿄대 총장이자 영화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 장면에서 '오줌을 쌀 뻔 했다' 며 감탄했다) .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피아노' 의 제인 켐피온 감독은 기타노에게 황금사자상을 수여하면서 "우리는 폭력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런데 '하나 - 비' 는 전반부는 폭력적이었지만 후반으로 오면서 전반의 폭력을 잊게 해주고 그것이 불가피한 폭력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었기 때문에 감동적이었다" 고 평했다.

기타노는 "폭력도 하나의 의사소통이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 고 답했다. TV에서는 만담으로, 영화에서는 폭력을 통해 그는 '소통 부재의 시대' 를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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