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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경찰, 위기를 기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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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손해용 사회부 기자

"총을 쏘면 쐈다고 욕먹고, 안 쏘면 안 쐈다고 욕먹는다. 경찰이 공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동네북에 가깝다." (A경찰서 강력계 반장)

"경찰은 언론에 울고 웃고, 행정부에 휘둘리고, 기획예산처에 손을 벌리고 있다." (B경찰서 형사계장)

젊은 두 경찰관이 피의자를 검거하다 순직한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 내부에서는 이런 자조적인 넋두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기회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경찰도 노조를 만들 때가 왔다"는 격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또 경찰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용의자가 반항할 땐 잡지 말고 도망가라' '폭행신고 출동 때는 시간을 끌어라'는 내용의 냉소적인 '복무지침'이 돌고 있다.

정의를 위해 싸우던 유능한 형사들이 불의의 사고로 희생되면서 울분과 비통에 잠겨 있을 경찰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찰의 위상을 폄훼하는 자기비하나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걱정스럽다.

국민에게는 이런 경찰의 언행이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됐을 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자'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의 불만이 커진 데는 언론이나 정부에 일부 책임이 있다. 경찰의 총기 오발사고를 질타했던 언론은 경찰관 피살 사건이 나자 반대로 공권력이 도전받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계급적 우위를 강조하고, 행정부는 다른 공무원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처우 개선을 미루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강성'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지금 신세를 한탄 할 때는 아니다. 경찰관 살해범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오늘도 각종 살인사건이 벌어져 국민은 외출조차 꺼리고 있다.

경찰은 오랜만에 모인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발판 삼아 신뢰받고 권위 있는 시민의 경찰로 거듭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손해용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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