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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요한 시기 … DJ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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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됐다 생환한 지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1973년 DJ 구명운동을 벌였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72·사진) 전 중의원 의장이 이날을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당시 36세였던 그는 3선 중의원 의원으로 문부성(현 문부과학성) 정무차관이었다. 구명운동을 계기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DJ와 고노 전 의장은 서로를 각별히 아끼는 사이가 됐다. 이후 두 지도자는 한국 대통령과 일본 외상으로 만나 한·일 관계를 한층 깊게 만들었다.

12일 도쿄에 있는 고노 전 의장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DJ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시대를 열었고, 한국인들의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 한반도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럴 때 노벨 평화상을 받은 DJ가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많다. 병상에서 다시 벌떡 일어나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장수 중의원 의장을 지낸 그는 지난달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의장에서 물러나 정계 은퇴했다. 14선 의원으로 자민당 총재와 외상·관방장관 등을 지냈다.

-13일은 김 전 대통령의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이다.

“그렇다. 73년 8월 8일 김대중이라는 한국 정치인이 도쿄의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황상 납치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섰다. 구명운동에 앞장선 사람은 70~80년대 평화·군축 운동을 했던 고 우쓰노미야 도쿠마(宇都宮德馬) 의원이다. 우리는 총리 관저와 외무성을 쫓아다니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를 통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줄 것을 촉구했다. 이후 그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설득력 있는 그의 웅변 실력, 민주화에 대한 그의 열망과 에너지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가로서 그를 존경한다.”

-김 전 대통령과의 친분이 깊은데.

“DJ가 97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너무 기뻤다. DJ의 전화를 직접 받고 실감했다.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으로 구성된 대통령 취임식 사절단에 난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뒤늦게 안 DJ가 개인적으로 날 초대했다. 그 바쁜 취임식 날 DJ가 따로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와 단 둘이 만나 회포를 푼 기억이 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친분이 외상 시절(99~2001) 한국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쳤나.

“DJ 재임 때 확고한 한·일 상호 이해관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각오였다. 역사 교과서 문제 등 갈등 요인도 많았지만, DJ는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와 ‘21세기 신(新)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발표했다. 철옹성 같았던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 결정도 이때 내려졌다. 그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에 나는 간이식 수술을 받고 주치의로부터 사람 많은 곳과 비행기는 멀리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어떻게든 DJ를 청와대에서 만나, 한·일 관계를 이해해주고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의사 몰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2003년 1월께다. DJ는 ‘뭣 하러 무리해서 왔느냐’고 했지만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

도쿄=박소영 특파원

◆고노 요헤이=자민당 내 대표적인 온건파 정치인이며 호헌론자다. 1993년 관방장관 시절에는 일제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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