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민주당 대표 “야스쿠니 신사와 별도로 국립 추도시설 건립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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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사진) 대표는 “30일 중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야스쿠니(靖国) 신사와는 별도로 새로운 국립 추도시설을 건립할 방침”이라고 13일 밝혔다.

집권 자민당보다 지지율이 높은 제1야당 대표의 이 같은 방침은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의 불씨였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전후 처리 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1869년 설립돼 올해로 창립 140년째를 맞은 야스쿠니는 A급 전범들의 유골이 합사돼 있어 일본이 저지른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는 상징물로 남아 있다.

하토야마는 이날 민주당 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총리와 각료가 참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국들의 반발 없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도록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 국립 추도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왕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못해 심정이 괴로울 것”이라며 “그가 마음 편하게 참배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하토야마는 자신이 총리가 되면 연립정권을 구성하게 될 사민당·국민신당 등 다른 정당의 지도부에도 새 추도시설을 건립하는 데 따른 이해를 구할 방침이다. 그는 12일에는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참배할 생각이 없다”며 “각료들에게도 (신사 참배를) 자숙하도록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토야마의 이 같은 발언들은 자민당 정권의 보수 노선에서 벗어나 일본의 외교 방향을 아시아 중시 외교로 전격 전환하겠다는 의미로도 분석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최근 아시아 공동통화 창설과 ‘동북아 외교 중시’를 주창하면서 한·중·일 3국 외교 관계 증진에 주력하고 나설 방침을 거듭 밝혀왔다.

새 추도시설 건립은 2000년대 들어 일본 내 온건 세력이 우익의 반대 속에 추진해왔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후 아시아 국가들이 거세게 비난하자 별도 시설을 만들자는 논의가 처음 제기됐다. 당시 관방장관 자문기구인 ‘추도·평화기원 기념비 등 시설에 관한 간담회’가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추도시설 건립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냈고, 고이즈미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측과 일본유족회 등 우익단체들이 “새 추도시설 건립은 야스쿠니를 껍데기로 만들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해 관련 논의가 중단됐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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