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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양김의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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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대한민국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 이 나라에서 그의 이름은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그런 그가 그를 수식했던 ‘정치인’ ‘재야인사’ ‘대통령’을 벗고 ‘인간 김대중’으로 돌아와 말없이 누워 있다.

그와 ‘세계사에 유례없는 특수 관계’인 사람이 그를 찾아온다. 김영삼. 이름의 대중성(?)과 영향력에서 한 치의 밀림도 없는 김대중의 라이벌. 그도 이미 역사다. 서울대를 나온 영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대통령이 된 사람.

대한민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김영삼·김대중 순으로 부르는 사람과 김대중·김영삼 순으로 부르는 사람, 그리고 호칭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까 봐 그냥 양김으로 부르는 사람. 그의 이름도 역시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세로축과 가로축에 그 유명한 애칭, YS와 DJ가 있다.

기자들이 YS에게 묻는다. DJ와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고. 그는 답한다. “그렇게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 기자들은 ‘역사적 화해 선언’으로 쓴다. 그들은 갈등도 팔리고 화해도 팔린다. 그들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들은 숨 쉬는 것까지 뉴스가 되는 사람이다. 아쉬운 것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일찍 만나 민주화운동 시절의 동지처럼 그렇게 부둥켜안았으면 정말 보기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그들이 화해한다고 대한민국의 갈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의 공개적인 화해를 그토록 원했던 까닭은 갈등이 그들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오늘 대한민국의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을 풀 지도자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DJ와 YS가 화해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지도자들로 역사에 기록되는 데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영웅들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국민의 진한 아쉬움 속에 ‘전설’로 남았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이긴 하지만 만약 그들이 민주화의 도정에서 죽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신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영웅으로 삶을 마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들 삶의 공과를 써 내려간다면 공의 줄보다는 과의 줄이 훨씬 더 길 수도 있겠지만 무게를 달아보면 공 쪽으로 기울어질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의 여정에서 많은 실망을 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도 이만한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시대를 끝내고 싶어 했지만 어느 정치인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 누구도 그들의 도전정신, 의지, 헌신, 용기, 역사인식, 소명의식, 정치력, 업적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국민의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 그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병상에서 뒤늦은 화해를 시도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부끄러운 것은 진정한 화해를 이끌 지도자가 없는 현실이다. 그들을 뛰어넘기는 고사하고 그들 수준에 이른 지도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